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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568
한자 內月里內赤祈子石
이칭/별칭 내월리 선독배기 바위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내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금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내월리 내적 기자석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내월리 지도보기
원소재지 내월리 내적 기자석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내월리
성격 기자용
크기 약 250cm[높이]|약 220㎝[너비]|약 29㎝[두께]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내월리 내적 마을에 있는 바위.

[개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내월리 내적 기자석에 비손하여 아들을 낳았다고 전한다.

[위치]

내월리 내적 기자석적성면 내월리 내적 마을 입구 국도 21호선 내적길 2번과 내적 승강장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버스 승강장 뒤편 감나무와 살구나무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 당시 통행량이 많아 제법 큰 주막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곳을 사람들은 선독배기라 불렀다고 하니 내월리 내적 기자석이 매우 중요한 표지석이 되었던 듯하다. 이후 역사의 소용돌이를 거치며 쓰러져 10여 년을 한쪽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마을 사람들이 상의해 현재의 위치에 옮겨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바로 옆에 세워진 조하영 시혜비(趙夏榮施惠碑)는 마을 정비 과정에서 다른 곳에서 옮겨 온 것이다.

[형태]

높이 약 250㎝, 너비 약 220㎝, 두께 약 29㎝의 마름모 모양의 검은색 판석인데, 마을 사람들은 ‘물레돌’을 닮은 형태라고 말한다. 돌을 세우기 위해 땅 속에 파묻은 아랫부분이 1m 정도 된다.

[의례]

아이를 낳고자 하는 부녀자들이 이 바위에 정성껏 기도를 드리면 아들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 부녀자들이 인적이 드문 시간에 몰래 정성을 드리기 때문에 구체적인 의례는 직접 확인할 수 없으나, 대개는 섣달그믐과 보름에 바위에 금줄을 쳐 놓고 정화수와 간단한 음식을 차려 놓고 비손하였다고 한다.

내월리 내적 마을 사람들로부터 내월리 내적 기자석에 치성을 드려 아들을 얻었다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치성을 드려 아들을 얻은 경우인데, 당시 슬하에 아들이 한 명 있었으나 그 뒤 딸을 낳고 아들 하나를 더 낳기를 바라서 비손을 해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마을 부녀 회장이 23세 되던 해에 시집을 와 보니 이 바위에 금줄이 둘러져 있어 그 연유를 물으니 이러한 사실이 있었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이미 아들이 있는 사람이 아들 낳기를 간절히 소원했다는 사실이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100여 년 전 사람들만 해도 아들이 하나만 있는 것은 없는 것과 같다고 여겼으며 자녀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돌 석(石)’ 자는 보통은 인명에 잘 쓰지 않으나 내월리 내적 마을에는 이 바위 덕분에 태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모가 이름에 ‘돌 석’ 자를 넣어 지은 사람이 있으며, 2013년 현재 58세가 되었다. 당사자는 지금도 이 바위와 관련된 마을의 일에는 솔선수범해서 돈을 내는 등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득남 사례가 적잖을 것이라고 한다.

[의의와 평가]

내월리 내적 기자석이 10여 년 정도 방치된 시기에 동네에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이 회의를 통해 이 바위를 다시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마을 공동의 의례를 별도로 행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신성하고 영험한 바위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전북 전통 문화 연구소, 『순창의 마을 입석』(순창 문화원, 2001)
  • 인터뷰(내월리 내적 마을 부녀회장 양남희, 여, 69세, 2013. 11. 2)
  • 인터뷰(내월리 내적 마을 이장 양병만, 남, 67세, 2013.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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