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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신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656
한자 民間信仰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집필자 한미옥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의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믿어져 내려온 신앙.

[개설]

민간 신앙은 일반적으로 종교를 인위적 종교와 자연적 종교로 구분할 때 후자를 의미한다. 흔히 불교나 기독교와 같이 교리가 문서화되어 있고, 또한 그것을 중심으로 조직을 갖는 것을 인위적 종교라고 말하며, 자연적 종교는 무속 신앙이나 풍수신앙 등과 같이 자연적 상태에서의 종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민간 신앙의 전승자인 민간인 자체가 인위적인 상황 이전의 자연적 상황 속에 있는 자연인이며, 이와 같이 자연인으로서의 민간인의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승되는 자연적 종교 현상 또는 그 관습 등을 민간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전승되는 민간 신앙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크게 마을 공동체 단위로 이루어지는 마을 신앙과 가정 또는 개인 단위로 이루어지는 민간 신앙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초에 마을에서 행해지는 당산제 또는 장승·솟대제 등은 순창 지역의 대표적인 마을 신앙이다. 당산제를 비롯한 마을 신앙은 과거에 비해 전승이 많이 단절되었지만, 아직도 몇몇 마을에서는 전통적인 신앙심에 근거하여 제를 모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정 또는 개인 단위로 이루어지는 신앙의 대표적인 형태는 가정 신앙[가택 신앙]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일 년 열두 달에 걸쳐 행해지는 세시 풍속 등에서도 순창 지역의 민간 신앙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당산제와 마찬가지로 가정 신앙과 세시 풍속 등을 통해 행해졌던 다양한 순창의 민간 신앙의 모습도 과학 기술의 발달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일반적으로 자연적인 상태에서의 민간 신앙은 그 시초를 원시 시대까지 소급해 볼 수 있다. 원시 상태에서의 인간은 우주 만물에 신성(神性)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 의식을 지냈고, 점복을 통해 미래를 예측했다. 부여의 영고(迎鼓)와 예의 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東盟)이라는 제천 의식은 그러한 원시 사고에서 발생한 것이다.

삼국 시대에는 불교·도교 등 여러 외래 종교가 유입되었다. 그러나 제정일치의 형태는 삼국 시대 초기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신앙의 대상이 된 신들도 매우 다양하였다. 성격을 규정하기 어려운 도깨비를 비롯하여 우상(偶像)·역귀(疫鬼)·자연신·동물신·식물신·왕신·장군신 등 많은 신들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산신 숭배, 장승에 관한 문화도 삼국 시대에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민간 신앙의 한 영역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려 시대는 생활면에서 민간 신앙이 널리 적용되었던 시대이다. 병이 생기면 약물 치료보다는 귀신에게 제사를 하는 데 주력할 정도였다. 기우제·기은제(祈恩祭), 재앙을 물리치고 병을 치료하는 일에서부터 서낭과 산신에게 비는 의식에까지 무격이 참여하였다. 때로는 무속에 의한 피폐가 크다고 하여 금하는 일까지도 있었다. 그리고 민간의 신에 대한 신앙도 불교와 혼합하여 매우 다양하게 신봉되었다. 불교 의식과 민간 신앙이 결합하여 깊이 뿌리를 내린 대표적인 행사로는 연등회와 팔관회를 들 수 있다. 연등은 원래 불교의 행사였으나 민간에 널리 전해짐에 따라 이전의 천신제와 혼합을 이루어 토착화하기에 이르렀다.

조선 시대에는 가택 안에 좌정한 많은 가택신들이 나타나고 있다. 집안의 신들 중에서 가장 높아서 대들보 위에 있는 성주신은 집안의 평안·무병·장수·행운·다남 등을 관장하는 매우 중요한 신으로 섬겨져 상달인 10월에 성주굿이 열렸다. 이 밖에도 지신이라고 불리는 토주신(土主神), 재산신인 사창신(司倉神), 곡식을 관장하는 제석신(帝釋神), 부뚜막신인 조왕신(竈王神), 문간의 출입을 단속하는 수문신(守門神), 변소의 신인 측신(厠神), 천연두의 방지를 위하여 모신 역신(疫神) 등이 신봉되었다. 이들 신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신앙 방법과 의식, 민속 등이 전래되고 있다. 또, 수호신으로는 고려 때와 같이 서낭·장승·소도 등을 모셨는데, 이 가운데 서낭의 신앙이 크게 성행하였다. 전국의 명산을 비롯하여 마을 입구, 고갯마루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서낭당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 특히 성행하였던 민간 신앙은 개화기 서구 문물의 유입과 함께 크게 위축되었다. 특히, 서양 의학이 들어오면서 무당의 의술적 기능은 크게 축소되었고, 1910년 이후 일본은 고유 신앙을 일소하기 위하여 민간 신앙을 미신으로 간주하여 미신 타파를 주장하였다. 무당이나 점복사에 대하여 엄하게 강압을 가하였으며, 마을의 당산제를 중단시키거나 신사를 파괴하기까지 하였다. 해방 이후 서구의 교육 방법과 생활 방법에 크게 영향을 받아 민간 신앙은 현대 생활 속에서 거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다만, 일부 지방에서 전승되어 온 굿이나 마을 신앙, 우리 것을 찾겠다는 뜻있는 사람들의 연구와 노력에 의해서 민간 신앙의 원형이 다시 복구되고 계승되어 가고 있다.

[마을 신앙]

순창 지역의 민간 신앙은 크게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마을 신앙과 각 가정에서 개인적 행위로 이루어지는 가정 신앙으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순창 지역에서 마을 단위로 이루어지는 마을 신앙의 행위로 당산제를 들 수 있다. 당산제는 마을의 안녕과 한 해의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해 공동으로 지내는 마을 제사를 의미한다. 순창 지역에서는 주로 음력 정월 대보름이나 정초에 제를 많이 지내며, 그 외에 2월 2일이나 10월 보름에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주로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여겨지는 선돌이나 당산나무, 조탑, 장승, 솟대 등에 제를 모신다. 순창 지역의 마을 공동 제의인 당산제는 그러나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을 기점으로 상당 부분 그 전승이 중단되었으며, 현재까지 당산제를 지내는 마을은 매우 적다.

순창 지역에는 당산제 외에 매우 특이한 제의가 있는데, 바로 성황제(城隍祭)다. 중국의 성황 신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943년(고려 태조 26)에서 996년(성종 15) 사이로 알려져 있다.

순창 성황 대신 사적기(城隍大神事跡記)와 성황 대신 사적 현판(城隍大神事跡懸板)의 기록에 따르면 순창 읍성에서도 옥천 설씨 가문의 충신 설공검(薛公儉)[1224~1302]을 성황 대신으로 배양하였고, 대모산성 양씨 부인과 함께 고려 후기부터 매년 성황당에서 제사를 지내 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후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 강점기인 1940년 무렵에 성황사가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되면서 순창의 성황제는 폐지되었다. 순창의 성황제는 성황신에 대한 제사를 핵심으로 하고 있지만, 과거부터 무당들이 그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는 등 오랜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성황신을 통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민간 신앙적 요소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

[가정 신앙]

다음으로 가정 단위의 민간 신앙은 각 가정의 부녀자가 사제자가 되어 행하는 가정 신앙과 일 년 열두 달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세시 풍속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가정 신앙은 말 그대로 집을 중심으로 한 신앙이다. 집이란 가족이 주거하는 장소이고, 그 집은 일정한 장소에 있다. 이 집은 집터와 가옥을 포함하고 있으며, 집터와 가옥의 여러 장소에는 그곳을 관장하는 신격이 있다고 믿어진다. 순창 지역의 가정 신앙의 대표적인 대상으로는 성주, 조상, 조왕, 삼신, 철륭, 칠성, 업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 신격들은 집안의 요소요소에 좌정하여 가족을 위한 신으로 대접받고 있다.

성주는 단지나 동우와 같이 특별한 신체 없이 안방 윗목에 상을 차리는 것으로 모시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설과 보름, 추석과 같은 명절이나 집안 제사나 생일 때 성주에게 상을 차려 올리는 것으로 모셔지고 있다.

집안의 조상신을 모신 조상 단지를 순창 지역에서는 ‘부룻 단지’라고도 부른다. 조상 단지 모시기는 모든 집안에서 하는 것은 아니며, 집안에 일찍 돌아가신 조상이 있거나, 점쟁이가 조상을 위해야 된다고 하면 일정한 절차를 밟아 조상 단지를 모시게 된다. 조상 단지를 모시는 장소는 흔히 안방의 시렁 혹은 장롱 위이며, 매년 가을마다 수확한 햅쌀로 단지 안의 쌀을 갈아 넣는다. 이때는 간단히 음식을 차려놓기도 하며, 조상 단지 안에 있는 쌀의 상태를 보고 길흉을 점치기도 하는데 쌀이 상하지 않고 깨끗해야 좋다고 믿으며, 조상 단지 안의 묵은 쌀은 밥을 지어 반드시 집안 식구들끼리만 먹어야 한다. 순창 지역에서 조상 단지는 대개 1970년대를 전후하여 많이 없어졌지만 지금도 조상 단지를 모시는 집들이 있다.

조왕은 작은 주발 속에 물을 담아 놓은 형태로 모셔지는데, 과거에는 부엌 아궁이의 부뚜막 위에 모셨지만, 지금은 부엌을 개조하면서 싱크대 위에 올려 모시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집와서 시어머니가 모시던 것을 며느리가 그대로 물려받아 모시거나, 군에 간 자식이나 장사하는 자식을 위해 모시는 경우가 많다.

삼신은 성주와 함께 모셔지는데, 특별한 신체 없이 명절이나 집안 제사 때 성주상과 함께 차려지거나 또는 성주상 밑에 짚을 깔고 그 위에 간단히 음식을 차려 놓는 것으로 모셔진다. 그 외에도 출산하는 방의 윗목에 차려 놓기도 한다.

철륭은 집 뒤의 장독대를 의미하며, 순창 지역에서는 모든 집에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산 밑에 집터를 잡은 집이나 집터가 센 집에서 모신다고 한다. 특별한 신체 없이 명절에 장독대 위에 준비한 음식을 차려 놓고 비손하는 것으로 모셔지며, 현재도 순창 지역에서 정성스럽게 철륭을 모시는 집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외에 집안의 재복을 지켜 주는 업은 구렁이라는 구체적인 동물이 신체로 믿어지고 있다. 특히 업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면 집안이 망하고 좋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시 풍속]

가정 신앙과 더불어 일 년 열두 달을 통하여 행해지는 세시 풍속은 각 가정과 개인 단위에서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민간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순창 지역의 세시 풍속에 나타난 민간 신앙적 요소는 정월부터 2~3월 사이에 집중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정월에는 설날 아침 떡국을 먹음으로써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관념을 시작으로 하여, 정초에 한 해 가족들의 건강과 재수를 기원하는 안택굿이나, 삼재가 든 사람을 위한 삼재막이나 액막이 등과 함께 12지일에 따른 그날그날의 금기 행위 또한 정월에 행했던 민간 신앙 행위다.

입춘 날에는 보리 뿌리를 캐어 그해 보리농사의 풍흉을 점치고, 대보름날에는 더위팔기나 남의 집의 찰밥을 얻어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거나, 갖가지 나물을 먹고 한 해의 소소한 불행 등을 미리 막거나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등의 행위 역시 민간 신앙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월 초하룻날에는 영등할머니를 위해 음식을 장만해 놓고 풍년을 기원하며, 삼월 삼짇날 맨 먼저 본 짐승이나 곤충 등을 통해 한 해의 운수를 점치고, 당산나무의 잎이 돋는 것을 보고 그해 농사의 풍년을 점치는 것도 역시 민간 신앙적 행위이다.

사월 초파일에는 절에 가서 가족들의 무사 평안을 비는 등을 단다. 오월 단옷날이 되면 인계면에 있는 ‘두렁쟁이’나 구림면의 ‘물통골’에 가서 물을 맞으면 몸에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어 물을 맞으러 간다. 유월 유두날 음식물을 가지고 시냇가 산간 폭포에 가서 머리를 감거나 씻으면 액을 면한다고 믿는다. 칠월 백중 날 아침에는 천신(天神)이 내려와 그해 곡식의 양을 정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들에 나가지 않는다. 추석날 비가 오면 보리농사가 흉년이 든다고 믿는 등도 대표적인 민간 신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음력 9월 9일 중양절을 ‘귀일날’이라 하여 연고 없는 묘지에 제사를 지내 주면 좋다고 하여 제사를 지내 주거나, 동짓날 팥죽을 쒀 집안 곳곳에 뿌리고 열 두 그릇에 담아 둔 팥죽의 모양을 보고 다음 해의 농사력을 예측하는 등도 모두 순창 지역에서 행해졌던 민간 신앙적 행위이다.

[기자 의례]

출가한 여성이 자식이나 아들을 낳기 위해 비는 기자 의례에서도 민간 신앙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순창 지역에서는 흔히 자식이나 아들을 낳기 위해 절이나 명산대천에 가서 치성을 드리는데, ‘대모암’이라는 절에 가서 빌면 아들을 가질 수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가서 치성을 드린다고 한다. 대개는 칠월 칠석날 절 내의 칠성당에 가서 공을 들이는데, 칠성당에 정화수와 쌀, 돈 등을 놓고 빈다. 절이나 산에 가서 공을 들일 때는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새벽에 행하며, 공을 들이는 사람은 깨끗이 목욕재계하고, 공들이기 3일 전부터는 비린 것도 먹지 않고 행동도 각별히 조심한다.

이 외에 순창의 적성면에 있는 채계산(釵笄山)[혹은 책여산(冊如山), 361m]과 복흥면 서마리 하마 마을백방산(栢芳山)[660m] 밑의 용바위, 적성면 내월리 내적 마을에 있는 기자 바위[내월리 내적 기자석, 선독배기] 등도 아들을 낳기 위해 치성을 드리는 장소로 유명하다.

또한 가정에서 ‘지앙맞이’를 하여 아이를 갖기도 하는데, 집으로 단골이나 점쟁이를 불러서 한다. 임신을 원하는 여성이 머리에 떡시루를 이고 앉아 있으면 단골이 그 앞에서 물이 담긴 함지박에 바가지를 엎어 놓고 숟가락으로 두드리는 ‘물방구’를 치면서 경문을 외운다. 이 외에도 대장간에 가서 작은 도끼를 만들어 허리에 차고 다니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를 할 때 달집에 맨 먼저 불을 붙이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으며, 정월 보름날 저녁에 강가의 짚 속에 모래와 약간의 동전을 넣어 만든 노두[일종의 징검다리]를 놓아두면 역시 아들을 낳는다고 믿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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