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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626
한자 南溪里虎峙-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형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남계리 호치 선돌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 지도보기
원소재지 남계리 호치 선돌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
성격 압승형
크기(높이,둘레) 200㎝[높이]|58㎝[폭]|28㎝[두께]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 호치 마을에 있는 선돌

[개설]

남계리 호치(虎峙) 마을은 고려 후기인 600여 년 전 경주 설씨(慶州薛氏)가 처음 입향하여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치리의 지명은 범바위산[224m]과 관련이 있다. 서암산에서 뻗은 지맥이 범바위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오고, 호치 마을은 백호 등에 위치하고 있다. ‘호치’의 우리말은 ‘범재’였다. 호치의 풍수 형국은 맹호 월령형이다. 범바위산 형상의 호랑이가 재를 넘어가는 형국이라 하여 범재였다가 호치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위치]

남계리 호치 선돌은 원래 마을 앞 중앙 당산나무 아래에 있는 마을 정자 옆에 서 있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 당시 정자를 헐고 마을 회관을 지으면서 선돌을 시멘트 마당에 파묻었다가 주민들의 요청으로 마을 앞쪽으로 옮겨 놓았고, 이후 마을 입구에 정자를 지으면서 그 옆에 갖다 놓았다.

[형태]

높이 200㎝ 폭 58㎝ 두께 28㎝의 자연석이다.

[현황]

남계리 호치 선돌은 현재 마을 입구 정자 옆에 가로 누인 채 방치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호치리 주민 설재균[84세]은 옛날 어린아이들이 홍역으로 죽어 나가는 등 난리가 날 때 선돌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 전염병과 역병이 마을에 횡행할 때 마을을 안정시키는 수단으로 압승형의 선돌을 마을 가운데에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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