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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705
한자 -粥-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덕천리|순창읍 순화리|금과면 매우리
집필자 황금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 풍속
의례 시기/일시 동지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동지에 팥죽을 집안에 뿌려 잡귀를 막는 풍습.

[개설]

팥죽 뿌리기는 동짓날에 새알심을 넣은 팥죽을 쑤어 대문·담장·벽·부엌·마당 등 집안 곳곳에 뿌려 나쁜 액이나 잡귀의 출입을 막는 세시 풍속이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는 신라에 이어 고려 시대에도 당나라의 역법서(曆法書)인 선명력(宣明曆)을 그대로 썼으니 동지를 설로 지낸 듯하다. 이로 인해 작은설이라는 말이 나왔다. 또한 동지에 먹는 팥죽은 화를 쫓는 주술로도 쓰였는데, 고대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 문헌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공공씨(共工氏)의 어리석은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역질(疫疾) 귀신이 되었는데, 아들이 생전에 팥을 무서워했으므로 역질을 막기 위해 팥죽을 쑤었다.”라고 한다.

『고려사(高麗史)』에는 민속 명절로 동지를 들었는데, “중국 후한 때 최식(崔寔)의 『사민월령(四民月令)』에도 11월 동지는 정월달과 같다.”고 하였다. 또 고려 때 시인 이색(李穡)의 시 「팥죽」에는 “동지의 시골 풍속이 집집마다 서로 팥죽을 보내니 백발의 늙은이도 흐뭇하게 기뻐한다.”고 하였다.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동지를 아세(亞歲), 즉 작은설이라 하고 적두죽(赤豆鬻)에 새알을 넣고 뿌린다고 하였다.

[변천]

순창 지역에서는 각 가정에서 지내는 동지 제사는 중단이 되었다. 동짓날 먹는 팥죽도 과거에는 동짓날에만 먹었던 시절 음식이나 지금은 보편적인 먹거리가 되어 사시사철 팥죽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일부 가정에서는 팥죽을 끓여 먹고 집 안팎에 뿌리는 풍습을 여전히 행하고 있으나 대부분 축귀 행위와는 별도로 동지 팥죽을 별식으로만 인식하게 되었다.

[절차]

동짓날의 가장 보편적인 행사는 팥죽을 쑤어 먹는 것으로, 동지가 음력으로 11월 10일 안에 들면 애동지[兒冬至]라 하고, 중순께 들면 중동지(中冬至), 20일이 넘어서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하여 동지가 드는 시기에 따라 명칭을 달리하여 불렀다. 그리고 애동지는 어린아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하여 이때는 팥죽을 쑤어 먹지 않고 팥 시루떡을 해서 먹는 풍속이 있다. 팥죽 뿌리기 절차는 우선 팥을 삶아 으깨거나 에 걸러 그 물에 찹쌀로 빚은 새알 크기의 찹쌀 단자를 넣어서 죽을 쑨다. 이 단자를 새알만한 크기로 만들었다고 해서 ‘새알심’이라고 한다. 동지 팥죽은 먼저 조상과 삼신, 성주, 조왕 등의 가신에게 한 그릇씩 떠서 올리며, 팥죽을 먹기 전에 한 그릇 떠서 대문이나 벽의 집안 사방에 팥죽을 솔가지로 뿌리고 난 후에 먹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붉은색을 띠는 팥이 음귀(陰鬼)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우물에 팥을 넣으며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지기를 빌었다.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갓집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 있는 악귀를 쫓기 위함이다. 따라서 동짓날 팥죽을 쑤어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의 벽에 뿌리는 것 역시 악귀를 쫓는 주술 행위의 일종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 팥죽, 팥떡, 팥밥 등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지 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는다. 또 이사 온 집에서는 팥 시루떡을 해서 고사를 지내고,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이웃집에 돌리기도 한다. 또한 추운 겨울날에는 노상에서 파는 팥죽 한 그릇으로 추위를 달래기도 했는데, 이것은 붉은색 팥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주술적인 의미 외에도 팥이 열을 내는 식품이기 때문에 절기 중 가장 추운 동지에 몸을 보양하는 의미에서 먹기도 하였다.

순창읍 순화리 주민 박순자는 일제 강점기에도 동지 팥죽을 뿌리는 풍습을 계속했는데, 동지 팥죽을 뿌리면서 일본어로 “후꾸와 우찌 오니와 소도.”라고 주문을 외웠다고 한다. 복은 집으로 들어오고 귀신은 밖으로 나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당시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생활 언어도 일본어를 사용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금과면 매우리 매우 마을 할머니 경로당에서는 요즘에는 팥죽 뿌리기가 미신이라 여겨 대부분 행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중 한 주민은 2013년 동짓날 아침에도 대문 앞에 팥죽을 뿌리고 왔다며 집안이 편안하라는 의미라고 했다.

팔덕면 팔덕 마을 주민은 문 앞에 팥죽을 뿌린 이유는 복이나 잡귀들이 문을 통해 집에 들어오기 때문이며, 예전에 솔가지를 꺾어 팥죽을 뿌린 이유는 없는 시절 먹기도 아까운 음식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잡귀를 쫓는 효과는 그대로 하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숟가락을 사용해 팥죽 뿌리기를 한다. 또 일부에서는 동지가 드는 시간에 맞추어 뿌려야만 효과가 있다고 하며, 달력에 나와 있는 동지가 드는 시간에 맞추었다. 지금은 대부분 시간을 가리지는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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