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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375
한자 鳳德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곽현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개설
법정리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9.37㎢
가구수 45가구
인구[남/여] 88명[남 47명0/여 41명]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가리와 덕흥리(德興里)가 병합하여 봉덕리(鳳德里)라 하였다. 덕흥리는 약 310년 전 안동 권씨 권치근(權治根)이 처음 이곳으로 와서 터를 잡고 크게 번창하였다는 뜻에서 이름 붙였다고 한다. 대가리는 조선 전기 이조 정랑을 지냈던 한익상(韓益相)이 영광 원님과 내기 바둑을 두다가 바둑판으로 원님을 때려 실신시킨 후 피신하여 마을을 이루고 상성기라 하였다가 뒤에 한가락으로 고쳐 불렀고, 192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대가리(大佳里)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대가리는 원래 항가라실이라고 하였다. 항가라실은 이두로 뜻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항’은 행(行)이며 ‘가라’는 은혜를 알라는 보은야(報恩也)라는 말이다. ‘실’은 집이란 말로 마을을 뜻하니, 보은을 행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구암사 법어에서 지어진 이름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후일 한자로 표기할 때 보은은 크게 아름답다 하여 대가리로 표기하지 않았나 싶지만 주변의 풍광과도 어울리는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봉덕리는 대가리와 덕흥리 2개 행정리로 나누어졌다.

[자연 환경]

봉덕리복흥면 서북쪽에 위치한다. 덕흥리는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과 경계하고 있는 도집봉(都集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산맥의 중간에 복흥에서 백양사로 넘어가는 곡두치(曲頭峙)에서 동쪽으로 꺾어져 자포실 앞에서 머물며 형성된 곳이다. 대가리는 정읍시 내장동과 경계를 짓는 까치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 서남쪽으로 꺾어진 후 다시 남쪽으로 돌아 개장하여 취락이 형성된 마을이다. 대가리에서 약 1㎞ 내장산 신선봉 쪽으로 가면 도화(桃花) 마을이 있는데, 이곳까지 대가리에 속한다. 도화 마을은 그 형상이 복숭아꽃이 땅에 떨어진 형상으로 도화락지(桃花落地)의 준말로 도화동이라 하였다. 또한 대가에서 도화로 가는 사이에 오른쪽으로 대가제가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봉덕리의 면적은 9.37㎢이며, 인구는 45가구, 88명으로 남자가 47명, 여자가 41명이다. 2개 행정리와 4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농가 대부분이 고추, 복분자, 오디, 오미자, 인삼 등 특용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한우 사육 역시 소득 증대에 한 몫을 한다.

덕흥리 서북쪽 도집봉 기슭에 구암사가 있는데, 백제 때 창건된 것으로 보아 삼국 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을 입구에 1.3m 높이의 선돌과 아름드리 당산나무 숲인 당산이 2개소 있는데, 당산나무들은 뒷산 붉은 바위의 기운이 마을에 해를 끼친다 하여 비보용으로 심었다. 음력 2월 초하루 주민들이 참여하여 줄을 꼬아 만든 다음 풍물패를 앞세우고 마을을 돈 다음 줄다리기를 하고 마을 입구에 있는 선돌에 줄을 감아 주고 위쪽 당산과 가운데 당산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제가 끝나면 뒤풀이 굿판을 벌이며 풍년을 빌고 마을의 화합을 다진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10.04 현행화 [상세정보] 가구수, 인구 변경, [현황] 인구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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