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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암 유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843
한자 星巖遺稿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손앵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문집
저자 양원영
권책 3권 1책
행자 12행 27자
규격 22.6×14.3㎝[반곽]
어미 상이엽 화문 어미(上二葉花紋魚尾)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근대 유학자 양원영의 문집.

[저자]

양원영(楊瑗永)[1861~1938]의 자는 원옥(爰玉), 호는 성암(星巖)이며,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1861년(철종 12) 11월 10일 순창군 적성면에서 태어났다. 충청도 모촌강사(茅村講舍)에서 강학하던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을 찾아가 배움을 들었다. 심석(心石) 송병순(宋秉洵)의 문하에서도 수학하였다. 성현의 글을 읽고 학문에 힘쓰며 제자들을 길렀다. 일제 강점기의 혼란기를 살다가 1938년 3월 5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인은 청주 한씨(淸州韓氏) 동엽(東燁)의 딸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장남은 양병철(楊秉哲), 차남은 양병익(楊秉益), 삼남은 양병직(楊秉直)이다. 묘소는 순창군 적성면에 있다.

[편찬/간행 경위]

장남인 양병철이 성암 사후에 선친의 유고를 모아 초본을 필사본으로 가장(家藏)하여 두었고, 손자 양만정(楊萬鼎)이 이것을 1986년 전주삼성인쇄사에서 간행하였다. 부록 1권을 포함해 모두 3권 1책이다. 권수에 갑오년(1954)에 울주 김노수(金盧洙)가 쓴 서문이 있고, 권미에는 병신년(1956)에 아들 양병익의 발문과 1986년에 손자 양만정이 쓴 발문이 붙어 있다.

[형태/서지]

『성암 유고(星巖遺稿)』는 활자본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책장의 네 모서리 모두 두 줄로 되어 있는 테두리]으로 상이엽 화문 어미(上二葉花紋魚尾)이다. 반곽(半郭)의 크기는 22.6×14.3㎝이다. 1면 12행에 1행의 자수는 27자이다.

[구성/내용]

권1에는 시(詩) 200여 수, 권2에는 서(書) 28편, 서(序) 18편, 설(說) 9편, 기(記) 16편, 상량문(上樑文) 3편, 가장(家狀) 4편, 행장(行狀) 1편, 묘지(墓誌) 4편, 제발(題跋) 3편, 제문(祭文) 5편이 있다. 권3은 부록으로서 제문, 만장(輓章), 가장, 행장, 묘표(墓表)가 있다. 스승인 연재공과 심석공에게 올린 편지글은 성현의 글을 읽다가 궁금한 내용을 물은 내용이다. 「권학설」(勸學說)은 배움에 힘써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글이다. 부록에는 제문(祭文), 만장(輓章), 가장(家狀), 행장(行狀), 묘표(墓表)가 있다. 가장은 성암의 장남 양병철이 썼고, 행장은 후창(後滄) 김택술(金澤述)이 썼으며, 묘표는 송회헌(宋會憲)이 썼다.

양원영의 시문은 일상과 사실(事實)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으며, 문장을 꾸미는 데 힘쓰지 않았다. 자신 혹은 일가친척과 지인들의 생일을 맞아 축하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감회를 적은 생조감시(生朝感詩) 계열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친척들과 지인들의 환갑을 축하하는 수연시(壽宴詩)도 많아서 성암이 특히 형제간의 우애와 친척간의 화목을 중히 여겼음을 보여준다. 또한, 평생을 고향에서 학문에 힘쓰며 어지러운 시국을 근심하고 안빈낙도의 삶을 지향하였다. 「안빈음(安貧吟)」[안빈을 읊다]에는 이러한 삶의 자세가 나타나 있다.

원헌원비병(原憲元非病)[원헌은 원래 병에 걸린 것이 아니었고]

안연불개락(顔淵不改樂)[안연은 안빈의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네]

인시사지상(認是士之常)[이것이 선비된 자의 법도임을 알아]

안안여지작(安安餘地綽)[편안하게 여기며 남은 생을 마치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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