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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은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844
한자 漁隱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손앵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11년연표보기 - 『어은집』 간행
소장처 전남 대학교 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용봉동 300]
성격 고도서|문집
저자 양사형
간행자 양종해
권책 1책
행자 10행 21자
규격 24.6×17.7㎝[반곽]
어미 내향 삼엽 화문 어미(內向三葉花紋魚尾)

[정의]

전라북도 순창 출신의 조선 전기 문관인 양사형의 문집.

[저자]

양사형(楊士衡)[1547~1599]의 자는 계평(季平), 호는 영하정(暎霞亭) 또는 어은(漁隱)이며, 본관은 남원(南原)이다.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사복시 부정(司僕寺副正)과 선산 부사(善山府使)를 지낸 양호제(養浩濟) 양홍(楊洪)이고, 어머니는 순흥 안씨(順興安氏)로 안극함(安克諴)의 딸이다. 옥계(玉溪) 노진(盧禛)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8년(선조 21) 문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다. 후에 선무 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병조 정랑(兵曹正郞), 영광 군수(靈光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승정원 도승지에 추증되었고, 순창의 화산 서원(花山書院)에 배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어은집(漁隱集)』은 오랫동안 필사본으로 전하던 원고를 후손들이 1851년(철종2) 목판(木板)으로 간행하였다. 양사형의 장자(長子)인 구음(龜陰) 양시진(楊時晉)과 차자(次子) 낙하정(落霞亭) 양시면(楊時冕) 삼부자(三父子)의 문집을 합본하여 단권(單券)으로 간행되었다. 또 어은공의 손자인 화양(華楊)양여매(楊汝梅)의 유집 1책과 묶어 삼세유집(三世遺集)으로 간행되었다. 권수(卷首)에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정태현(鄭泰鉉)의 서문과 족후손(族後孫) 양원영(楊瑗永)의 서문이 실려 있으며, 권미에 발문은 없다.

[형태/서지]

『어은집』, 『구음집(龜陰集)』, 『낙하정 유고(落霞亭遺稿)』는 1책으로 합본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 단변(四周單邊)[책장의 네 모서리 모두 한 줄로 되어 있는 테두리]으로 내향 삼엽 화문 어미(內向三葉花紋魚尾)이다. 반곽(半郭)의 크기는 24.6×17.7㎝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1자이다. 이화 여자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어은집』의 내용은 시(詩), 문(文),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화산 서원 춘추 향사 축문(花山書院春秋享祀祝文)」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는 오언 절구 5수, 오언 율시 7수, 칠언 절구 12수, 칠언 율시 7수, 고시(古詩) 7수 등 모두 37수가 실려 있고, 문은 제문(祭文) 3편, 서(書) 1편이 수록되어 있다. 부록으로 작가의 이름이 없는 가장(家狀)과 만헌(晩軒) 정염(丁焰)이 지은 묘지(墓誌)과 도암(陶庵) 이재(李縡)가 지은 묘비명(墓碑銘)이 있다. 그밖에 지인들이 보내 온 제문과 만사(輓詞) 몇 수가 실려 있다. 시 중에 「차안사제당처순운(次安思齊堂處順韻)[사제당 안처순의 시에 차운하다]」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사인거후(永思人去後)[영사정에서 놀던 사람 떠난 뒤에도]

인복영언사(人復永言思)[사람은 다시 영사정을 읊는다네]

전가지불궤(傳家知不匱)[가업 이어 연면함을 알고]

여미시주시(儷美是周詩)[짝지어 아름다우니 이것이 시로다]

「광한루여윤오음두수상화(廣寒樓與尹梧陰斗壽相和)」[광한루에서 오음 윤두수 상공과 창화하다]는 오음 윤두수가 1586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순창에 왔을 때, 순창 군수 고경명(高敬命)이 남원 광한루에서 베푼 연회석에서 읊은 시이다.

작주금배요(酌酒金盃凹)[오목한 술잔에 술을 따르고]

도등옥수섬(桃燈玉手纖)[고운 손은 등잔 심지를 돋우네]

야심하유로(夜深荷有露)[밤 깊어 연꽃에 이슬 맺혔는데]

량의만주렴(凉意滿珠簾)[서늘한 기운이 주렴에 가득하구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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