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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873
한자 平澤林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집성지 평택 임씨 세거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 지도보기|인계면 갑동리지도보기|유등면 외이리지도보기
성씨시조 임팔급(林八及)
입향시조 임용배(林用培)|임용계(林用桂)

[정의]

임팔급을 도시조(都始祖)로 하고 임용배, 임용계를 입향세거조(入鄕世居祖)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의 세거 성씨.

[개설]

평택 임씨는 순창 지역 토착 성씨로 고려 충숙왕(忠肅王)임중연(林仲沇)순창군(淳昌君)에 봉군됨으로써 후손들이 임중연을 파시조로 삼고 본관을 평택에서 순창으로 분적하여 순창 임씨(淳昌林氏)로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임중연의 아들 임선미(林先味)가 고려왕조에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 순절(殉節)한 두문동(杜門洞) 72현의 영도자인 관계로 후손들이 화를 입게 되자 임선미의 둘째 아들 임용달(林用達)만 송도[개성의 옛 이름]에 남고 큰아들 임용배(林用培)와 셋째 아들 임용계(林用桂)는 순창, 홍주[홍성의 옛 이름]로 피해 은거한 이후 임용배의 후손은 순창과 화순에 주로 세거하였고, 임용계의 후손은 주로 홍성을 비롯해 일부가 유등면 외이리에 세거했다.

1789년(정조 1) 송도, 홍주 거주 종인(宗人)들이 임중연을 1세로 『순창임씨세보(淳昌林氏世譜)』를 초수한 후 50년 후 송도, 홍주, 화순 거주 종인들이 중수하였고, 그 60년 후에 송도, 홍주, 화순, 순창 거주 종인들이 본관을 다시 평택 임씨로 하였다. 이로 인해 아직도 본관을 순창 임씨로 하는 종인들이 전국에 남아 있다.

순창에는 후손들이 유등면 외이리인계면 갑동리 호계 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세거하고 있다. 2000년 인구 총 조사 때 전국적으로 총 6만 5015가구, 21만 8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연원]

평택 임씨는 당(唐)나라 한림학사 임팔급(林八及)을 도시조로 하고 있다. 임팔급은 840~900년경 정치적 화를 피해 당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온 여덟 명의 한림학사 중 한 명으로 팽성[현 평택의 옛 이름]에 정착하여 세거한 까닭에 후손들이 본관을 평택으로 하였다.

『전국임씨중앙회 회보』[제16호]에 의하면 임팔급을 1세로 하여 2세손 임양저(林良貯)에서 선산과 진천, 7세손 임몽주(林夢周)의 아들 임자미(林自美)의 세계에서 나주와 은진, 임견미(林見美)의 세계에서 평택, 장흥, 조양[임천, 전주, 보성, 안동], 임하로 분파했고, 임기미(林箕美)의 세계에서 회성, 임계미(林季美)의 세계에서 울진, 예천, 순창, 부안, 밀양 등으로 분파되었다. 임팔급의 7세손 임몽주의 아들 임견미의 세계인 평택 임씨는 고려 후기 세자 전객령(世子典客令) 겸 연희궁 부사(延禧宮副使)를 지낸 임세춘(林世春) 세계를 이어 오는 전객령계(典客令系)와, 역시 고려 후기 삼중대광 평성 부원군(三重大匡平城府院君)이 된 임언수(林彦脩) 세계를 있는 충정공계(忠貞公系)로 나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평택 임씨는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19명, 공신 1명, 대제학 1명, 청백리 4명을 배출하였다.

[입향 경위]

순창 지역 평택 임씨는 예천 임씨(醴泉林氏)로부터 시작된다. 예천 임씨 시조 임춘(林椿)의 5세손 임중연(林仲沇)이 고려 충숙왕 때 공이 있어 추성 양절 공신(推誠亮節功臣)에 녹훈되고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를 지냈으며 순창군에 봉군되었기에 순창 임씨의 시조가 되었다. 임중연의 아들 임선미는 고려가 망하자 충절을 지키고자 조의생(曺義生) 등 71명과 함께 두문동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항거하다 끝내 죽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임선미의 후손들에게까지 그 화가 미쳤다. 조선 태조(太祖)가 두문동의 초막을 모두 불태워 없애게 하고 그 자손에게 과거를 보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뒤에 임선미는 개성의 표절사(表節祠)와 순창의 호계사(虎溪祠)에 배향되었다.

두문동 사건 직후 임선미의 첫째 아들 임용배(林用培)와 셋째 아들 임용계(林用桂)는 전라도 순창으로 내려가고, 둘째 아들 임용달(林用達)은 개성에 남았다. 임용배와 임용계가 순창으로 내려간 것은 할아버지 임중연순창군에 봉군된 인연 때문이다. 임용계의 후손은 순창군 유등면으로 들어와 세거하였고 임용배의 후손 일부가 순창읍 금덕에 들어와 살았다. 인계면 갑동리 호계 마을평택 임씨 입향조와 입향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순창읍 남계리 금덕 마을유등면 외이리에서 살았던 임용계와 임용배의 후손 일부가 옮겨 가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순창의 평택 임씨는 모두 임선미의 후손이라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본관을 평택으로 되돌려 사용하였다.

정리하면 순창의 평택 임씨는 최초 평택 임씨에서 갈라져 나온 예천 임씨에서 분적된 순창 임씨의 후예이다. 그런데 두문 삼절의 한 사람인 임선미의 일로 해서 불이익을 피하고자 원래의 본적인 평택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순창의 평택 임씨는 대부분 순창 임씨가 아닌가 한다.

[현황]

2000년 순창 지역 평택 임씨는 213가구, 52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989년 순창군에서 실시한 인구 통계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순창 지역의 평택 임씨인계면 갑동리 호계 마을에 70가구, 유등면 외이리 외이 마을에 41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고 있었으며 2013년 12월 현재도 계보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러나 순창읍 남계리 금덕 마을평택 임씨는 단 한 가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1930년 국세 조사 통계 자료에는 금덕 마을에 35가구가 거주하고 있었으나 인계면 호계 마을로 상당수가 옮겨 갔고, 산업화 사회가 되면서 자녀의 교육 및 이농 현상으로 인하여 서울 등 도시로 일부가 이거한 것으로 보인다.

[관련 유적]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갑동리호계사(虎溪祠)가 있다. 호계사는 1943년 임선미의 후손들과 순창의 유림들이 임선미의 절개와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지었다. 매년 음력 3월 17일에 추모제를 갖는다. 유등면 외이리 평택 임씨의 집안에 5대에 걸쳐 여섯 명의 효자가 탄생하여 그 공적을 새기는 정려인 ‘오대 육효 정려’가 있다. 유등면 유촌리 구마등 산기슭에 자리한 어초정(漁樵亭)은 어정(漁汀) 임종주(林棕周)와 초봉(樵奉) 임한주(林漢周) 형제가 1929년에 지은 것으로 이들 호의 첫 글자를 따서 어초정이라 하였다. 현판은 고종(高宗)의 아들인 이강(李堈)의 친필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솔** 내용이 다른 곳이 너무 많아요.
  • 답변
  • 디지털순창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택 임씨에 대한 내용 중 어디 부분이 다른 지 댓글로 적어주시면 검토 후 반영을 하겠습니다.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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