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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황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883
한자 長水黃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 시기/일시 1760년 - 장수 황씨 입향조 황해 순창 입향
세거|집성지 장수 황씨 세거지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주월리 지도보기
성씨시조 황경(黃瓊)
입향시조 황해(黃楷)

[정의]

황경을 시조로 하고 황해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개설]

장수 황씨(長水黃氏)는 황경(黃瓊)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장수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의 장수 황씨 입향조는 무민공(武愍公) 황진(黃進)의 후예 황해(黃楷)이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4만 5567가구, 14만 6575명이 거주하고 있다.

[연원]

장수는 전라북도 동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황씨(黃氏)의 도시조(都始祖) 황락(黃洛)은 중국 절강 사람으로 후한(後漢)의 유신(儒臣)이다. 신라 때인 28년(유리왕 5) 사신으로 교지국(交趾國)[베트남]에 가던 도중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안아진(安我鎭)[현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면]에 상륙하여 평해에 정착·세거한 것이 우리나라 황씨의 시초라 할 수 있다.

황경은 황락의 후손으로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부마로 시중을 지냈다. 황경은 장수군(長水君)에 봉해져 장수 황씨의 시원이 되었던 황을고(黃乙古)의 아들이라고 하나 장수 황씨 문중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후 10세손 황공유(黃公有)가 고려 명종(明宗) 때 전중감(殿中監)으로 이의방(李義方)의 난을 피해 장수로 낙향하였고, 15세손 황감평(黃鑑平)이 후학을 위한 덕망 있는 학자였다는 것 외에는 이조 참의를 역임한 18세손 황석부(黃石富)까지 고증할 자료가 없다. 그래서 후손들이 황석부를 기세조로 하고 장수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황석부는 황희(黃喜)의 증조할아버지로 사후에 호조 참의로 추증되었다. 장수 황씨는 호안공파(胡安公派), 소윤공파(少尹公派), 열성공파(烈成公派)로 나누어졌다.

조선 시대 4대 명상(名相)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황희는 24년간 정승을 지냈으며 그중 18년간 영의정을 지내면서 농사의 개량과 예법의 개정, 서얼의 천역(賤役) 면제 등의 치적을 쌓았다. 황희의 아들 중 황치신(黃致身)은 중추부 판사 등을 역임하고 우의정에 올랐고, 황수신(黃守身)은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황정욱(黃廷彧)은 이조 판서, 예조 판서 등을 역임하고 광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시와 서예에도 뛰어났다. 황경원(黃景源)은 대제학을 비롯하여 이조 판서, 예조 판서, 공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이밖에 문장과 서예가 뛰어났던 황맹헌(黃孟獻), 황여헌(黃汝獻), 황효헌(黃孝獻) 3형제가 유명하고 선조(宣祖) 때 일본에 다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내침을 예고한 황윤길(黃允吉), 숙종(肅宗) 때의 학자로 의학과 지리에 정통하여 『여지도(輿地圖)』를 만들고 『지도연의(地圖衍義)』를 저술한 황엽(黃曄), 순조(純祖) 때의 명신 황승원(黃昇源), 개항기의 우국지사로 『매천야록(梅泉野錄)』을 지은 황현(黃玹) 등을 배출하였다.

[입향 경위]

황진의 손자인 당촌(唐村) 황위황위의 아들 운계(雲溪) 황신구(黃信龜)가 모두 대실 황씨의 소몽조(所蒙祖)이다. 1760년(영조 36) 황신구의 5세손 황해가 전라북도 남원군의 대실에서 당시의 영계방[지금의 동계면 주월리] 배재로 이거하여 별도 배재 황씨를 이루고 살았다. 지금은 몇 집밖에 남아 있지 않으나 옛날에는 수십 가구가 거주하였다.

[현황]

2000년 순창 지역의 장수 황씨는 124가구, 29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11년 현재 동계면 주월리에 황해의 후손 8가구가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

동계면 주월리에 월촌(月村) 황달주(黃達周)의 공적 추모비가 있다. 황달주는 황진의 후예로 사립학교 명신제(明新薺)를 세워 인재를 육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류지를 쌓고 양잠 사육 기술을 익히게 하는 등 일생을 복지 사업에 헌신한 공적을 기려 1991년 명신제에서 수학한 사람들이 세웠다. 동계면 주월리에 있는 정자 청류당(淸流堂)은 선조를 기리어 1957년 장수 황씨 후손들이 지은 것으로, 황의손(黃義孫)이 지은 당기와 분암(憤庵) 안훈(安壎)이 지은 당기가 걸려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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