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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914
한자 金淨
이칭/별칭 원충(元沖),충암(沖庵),고봉(孤峯),문간(文簡),문정(文貞)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86년 - 김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07년 - 김정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14년연표보기 - 김정 순창 군수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19년 - 김정 제주도 유배
몰년 시기/일시 1521년 - 김정 사망
추모 시기/일시 1545년 - 김정 복관
추모 시기/일시 1646년 - 김정 영의정에 추증
추모 시기/일시 1744년 - 삼인대비 건립
출생지 김정 출생지 - 충청남도 보은군
부임|활동지 김정 부임지 - 전라북도 순창군
유배|이배지 김정 유배지 - 제주특별자치도
묘소|단소 김정 묘소 - 대전광역시 동구 회남로 117[신하동 268-5]
사당|배향지 상현 서원 - 충청남도 보은군 외속리면 서원리 304
사당|배향지 신항 서원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이정골로 115-8[용정동 120]
사당|배향지 귤림 서원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현길 75[이도 1동 1421-1]
사당|배향지 성곡 서원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
유허비 보은 김정 유허비 및 비각 - 충청남도 보은군 보은읍 성족리 179
순창 삼인대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 강천사지도보기
성격 문관|학자|순창 군수
성별
본관 경주(慶州)
대표 관직 형조 판서

[정의]

조선 전기 순창 군수로서 삼인대에서 중종의 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한 문관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沖庵)·고봉(孤峯). 증조할아버지는 김호(金滸)로 평택 현감(平澤縣監)을 지냈으며 도승지(都承旨)에 추증되었다. 할아버지는 김처용(金處庸)으로,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아버지는 김효정(金孝貞)이며 호조 정랑(戶曹正郞)을 지냈고, 이조 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되었다. 어머니는 김해 허씨(金海許氏)로 판관(判官) 허윤공(許允恭)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정(金淨)[1486~1521]은 1486년(성종 17) 충청남도 보은에서 태어나 3세 때 할머니에게 글을 배웠고, 10세가 되기 전에 이미 사서(四書)에 능통하였다. 1507년(중종 2) 증광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에 임명되었다. 그 후 수찬, 병조 좌랑, 정언, 병조 정랑, 이조 정랑 등을 거쳐 1514년(중종 9)에 순창 군수로 부임하였다. 1515년에 장경 왕후 윤씨가 죽자 담양 부사 박상(朴祥), 무안 현감 유옥(柳沃) 등과 함께 중종이 왕후 신씨(愼氏)를 폐출한 것은 명분에 어긋나는 일이라 하여 순창의 삼인대에서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였다. 또한 신씨 폐위의 주모자인 박원종(朴元宗) 등의 죄를 다스려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로 왕의 노여움을 사서 충청남도 보은의 함림역(含琳驛)으로 유배되었다. 이때 권민수(權敏手)·이행(李荇) 등은 김정·박상 등을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고 간하였다.

하지만 영의정 유순(柳洵) 등은 권민수 등의 견해에 반대하였고, 조광조(趙光祖)김정 등을 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대간을 파직해야 한다고 임금에게 청하였다. 1516년(중종 11)에 박상과 함께 석방되었으며, 이후 대사헌 행부제학 동지성균관사(大司憲行副提學同知成均館事)에 제수되었다. 1519년(중종 14)에 대사헌으로서 어버이를 만난 후 직위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묘사화(己卯士禍) 때는 영의정 정광필(鄭光弼) 등이 옹호해 준 덕분에 유배형에 처해져서 처음에는 금산(錦山)에 유배되었다가, 진도를 거쳐 제주도로 옮겨졌다. 1521년(중종 16)에 신사무옥(辛巳誣獄)에 연루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하달하니 36세의 나이로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같은 해 청주(淸州) 고해산(苦海山) 아래에 반장(返葬)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는 『충암집(冲庵集)』이 있다. 특히 문집에 실린 「제주 풍토록」은 기묘사화로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제주도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여 독특한 제주도의 풍습을 그려 냈다.

[묘소]

묘소는 대전광역시 동구 신하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정은 사후 1545년(인종 1)에 복권되었고, 1646년(인조 24)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었다가 후에 문간(文簡)으로 고쳐졌다. 충청북도 보은 상현 서원, 충청북도 청주 신항 서원, 제주시의 귤림 서원, 충청남도 금산군의 성곡 서원에 제향되었다. 박상·김정·유옥 등이 모여 상소를 올린 것을 기념한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순창 삼인대(三印臺)에 1744년(영조 20) 4월, 비(碑)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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