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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943
한자 柳匡天
이칭/별칭 군필(君弼),귀락와(歸樂窩),류광천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32년연표보기 - 유광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55년 - 유광천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으로 이거
활동 시기/일시 1759년 - 유광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96년 - 유광천 승지에 제수
몰년 시기/일시 1799년연표보기 - 유광천 사망
출생지 유광천 출생지 - 전라남도 광주 오호리
거주|이주지 유광천 이주지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묘소|단소 유광천 묘소 -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오동촌
성격 문관
성별
본관 서산(瑞山)
대표 관직|경력 사간

[정의]

조선 후기 순창에 거주한 문관.

[가계]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군필(君弼), 호는 귀락와(歸樂窩). 이조 판서를 지낸 유백유(柳伯儒)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나옹(懶翁) 유익서(柳益瑞), 할아버지는 생원(生員) 유지채(柳之采)이다. 아버지는 양기공(兩棄公) 유휘소(柳輝韶)이고, 어머니는 함평 이씨(咸平李氏) 생원 이숙빈(李淑馪)의 딸이다. 처는 문정공(文正公) 김인후(金麟厚)의 6세손 김기조(金基祖)의 딸 울산 김씨이다.

[활동 사항]

유광천(柳匡天)[1732~1799]은 1732년(영조 8)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익혀 9세에 이미 『논어(論語)』와 『맹자(孟子)』를 마치고 장편시를 지었으며, 장성해서는 문장으로 이름이 났다. 24세 때인 1755년(영조 31)에 광주에서 순창군 복흥면으로 옮겨 거주하였다. 28세 때인 1759년(영조 35) 기묘 별시(別試) 병과 6위로 급제하였다. 장령(掌令)을 거쳐 경성 판관(鏡城判官)에 제수(除授)되었고, 헌납(獻納)·사간(司諫)에 이어 1796년(정조 20) 승지(承旨)를 역임하다가 1799(정조 23)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는 시문집 『귀락와 문집(歸樂窩文集)』 16권 8책의 석판본이 있다.

[묘소]

묘소는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오동촌 뒤 간좌의 언덕에 있다.

[참고문헌]
  • 순창 군지 편찬 위원회, 『순창 군지』(순창군, 1982)
  • 한국 역대 인물 종합 정보 시스템(http://people.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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