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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구 처 열녀 전주 이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959
한자 林炳球妻烈女全州李氏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종교/유교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유산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최범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3년연표보기 - 임병구 처 열녀 전주 이씨 출생
추모 시기/일시 1916년 - 임병구 처 열녀 전주 이씨 효열 정려 건립
정려 전주 이씨 효열 정려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유산길 40-10[유산리 208]지도보기
성격 효부|열부
성별
본관 전주

[정의]

개항기 순창 지역의 효부이자 열부.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이주의(李周儀)이고, 남편은 나주 임씨(羅州林氏) 임병구(林炳球)이다.

[활동 사항]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임병구 처 열녀 전주 이씨[1883~?]는 1883년(고종 20)에 출생하였고, 어려서부터 효성이 깊어 칭송이 자자하였다. 나주 임씨 집안으로 출가하여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섬기고 남편을 예절에 따라 받들었다. 남편이 괴질에 걸리자 자신이 대신하기를 기원하고 대소변을 맛보면서 병세를 가늠하며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남편의 병이 깊어지자 허벅지 살을 베어 구환하기도 하였고,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넣어 먹임으로써 수일 동안 연명하게 하였다. 하지만 남편이 끝내 세상을 떠나자 따라 죽기로 결심하고 가슴을 돌로 치다가 시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뜻을 돌이키고 예절에 따라 장사를 지냈다. 그 뒤 시부모에게 효성을 다하여 봉양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상훈과 추모]

임병구 처 열녀 전주 이씨의 효열(孝烈)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으며, 1916년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유산리에 ‘전주 이씨 효열 정려(全州李氏孝烈旌閭)’라는 이름의 정려각이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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