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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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應聖 |
이칭/별칭 | 경기(景期),구와(龜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훈 |
출생 시기/일시 | 155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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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한응성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592년![]() |
추모 시기/일시 | 1892년 - 한응성 이조 참의 추증 |
출생지 | 한응성 출생지 -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
거주|이주지 | 한응성 이주지 - 전라북도 순창군 |
활동지 | 한응성 의병 활동지 - 충청남도 금산군 |
묘소 | 한응성 묘소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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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비 | 한응성 충절비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노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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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의병장 |
성별 | 남 |
본관 | 청주(淸州) |
대표 경력 | 의병장 |
조선 전기 순창에 거주하다가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의병장.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기(景期), 호는 구와(龜窩). 고조할아버지는 좌익공신(佐翼功臣) 청성군(淸城君) 한종손(韓終孫)이며, 아버지는 대호군 한축(韓軸)이다.
한응성(韓應聖)[1557~1592]은 1557년(명종 12)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에서 출생하여 순창으로 옮겨 살았다. 조헌(趙憲)에게 학문을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헌이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 하인 수십 명을 데리고 합세하였다. 1592년(선조 25) 8월에 청주에서 힘을 다하여 싸워 적군을 격퇴하고, 충청도 금산으로 진격하여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위패는 금산의 칠백의총(七百義塚)에 제향되었다. 금산 전투에 같이 참가하였던 노비 부협(夫脅)도 싸움에서 큰 상처를 입고 쌓인 시체 가운데 은신하였다. 부협은 적이 물러간 뒤에 한응성의 시체를 거두어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선산(先山)에 장사 지내고 자신도 순사(殉死)하였다.
묘소는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다.
1892년(고종 29) 한응성에게 이조 참의를 추증(追贈)하고 정려를 내렸다. 순창군 인계면 노동리에 한응성 충절비가 있다. 비석 앞에는 부협의 의로움을 기려 ‘충노 부협지비(忠奴夫脅之碑)’도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