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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965
한자 金致世
이칭/별칭 준영(俊永),지지당(知止堂),김춘세(金春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범호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3년연표보기 - 김치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김치세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
활동 시기/일시 1597년 - 김치세 정유재란 때 의병 활동
몰년 시기/일시 1597년연표보기 - 김치세 사망
출생지 김치세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사우 옥산사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대가1길 25-32[대가리 1048]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본관 김해(金海)
대표 경력 선무랑 주부

[정의]

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 김해(金海). 자는 준영(俊永), 호는 지지당(知止堂), 초명은 김춘세(金春世). 증조할아버지는 문민공(文愍公) 김일손(金馹孫), 아버지는 김장(金將)이다. 아들은 효자 김산경(金汕慶)이다.

[활동 사항]

김치세(金致世)[1563~1597]는 1563년(명종 18) 순창군 풍산면에서 출생하였다. 조헌(趙憲)의 문인으로서 1590년(선조 23)에 음직으로 선무랑(宣務郞) 주부(主簿)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분을 느껴 의병을 일으켰다. 변사정(邊士貞)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전(前) 군수(郡守) 양사형(楊士衡)을 부장으로 삼아, 금산(錦山)·무주(茂朱)·한천(漢川) 등지에서 왜적을 무찔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아들 김산경(金汕慶)과 노복 수십 명을 거느리고, 모집한 수백 명의 의병과 함께 출전하였다. 호남을 넘어 전라남도 곡성에 주둔하였다가 석곡(石谷)에서 적을 대파하였다. 동으로 도주한 왜병을 뒤쫓아 전라남도 구례(求禮)의 압록진(鴨綠津)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 사복시 주부(司僕寺主簿)를 추증하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이등(二等)으로 녹훈(錄勳)하여 그 이름을 철권(鐵券)[공신녹권이라고도 하며, 고려·조선 시대에 공신에게 수여하던 상훈 문서]에 기록하였다. 1957년에 김치세가 살던 옛터인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에 사우(祠宇)를 창건하여 옥산사(玉山祠)라고 하였다. 이듬해부터 김일손김치세를 향사하다가 1962년에 아들 김산경을 추배(追配)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김** 김치세 할아버님은 김치삼 할아버님의 아우로 순창태생이아니라 남원태생 으로 사료됩니다.
  • 답변
  • 디지털순창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의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알려주시면 적극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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