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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621
한자 魚隱里-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어은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형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어은리 선돌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어은리 지도보기
원소재지 어은리 선돌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어은리
성격 풍수 비보용
크기(높이,둘레) [왼쪽 선돌]높이 115㎝, 폭 32㎝, 두께 28㎝|[오른쪽 선돌]높이 92㎝, 폭 118㎝, 두께 28㎝|[모정 선돌]높이 128㎝, 폭 48㎝, 두게 25㎝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어은리에 있는 선돌.

[개설]

어은리는 천안 전씨(天安全氏)와 경주 최씨(慶州崔氏)가 처음 터를 잡았다고 한다. 두 성씨와 관련한 설화를 보면, “두 성씨가 임진왜란을 피해 각각 골짜기에 들어와 살면서 한 우물을 사용하였으나 각각 상대가 산다는 것을 몰랐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물을 길러 온 사람 발자국을 보고 인근에 거주한다는 것을 알고 서로 왕래하면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어은리의 마을 형국은 와우(臥牛) 형국이다. 마을의 주산에 ‘외양맞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외양간[소막]’이라고 부른다. 그 아래 뒷동산이 와우 형국이다.

소꼬리 근처에 정지굴이 있고, 맞은편에는 소발 형국이 있으며,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쪽은 소구시 형국을 갖추고 있다. 전형적으로 산간의 소막에서 한가롭게 먹이를 먹으며 앉아 있는 소의 모습을 연상시키기에 좋은 풍수 형국을 보여 준다. 어은리 선돌은 마을 골짜기 아래 좌우 지맥이 멈춘 곳에 압승용 수구막이로 세워 놓은 것이다. 어은리 주민 한명준[75세]은 이 선돌을 ‘탑’이라고 하였다.

[위치]

어은리 선돌어은리 입구에서 마을 정자나무 아래 모정까지 3단으로 수구막이 선돌을 좌우 2개씩 조성해 놓았다. 마을에서 내려다보면 골짜기 양쪽 세 곳[초(初)·중(中)·종(終)]에 수구막이로 선돌을 세운 것이다. 마을 모정이 있는 곳에 할머니 당산나무와 할아버지 당산나무가 세워져 있는데, 그곳 할아버지 당산나무 아래에 상돌[상석]이 있었다.

[형태]

5기의 선돌 중 3기가 남아 있다. 중단의 2기는 왼쪽 선돌이 높이 115㎝, 폭 32㎝, 두께 28㎝이고, 오른쪽 선돌이 높이 92㎝, 폭 118㎝, 두께 28㎝이다. 마을 모정 근처에 위치하는 선돌은 높이 128㎝, 폭 48㎝, 두게 25㎝이다. 모두 화강암이다. 마을 골짜기 초입에 위치한 수구막이는 선돌은 없어도 함부로 파거나 매각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의례]

당산제를 지낼 때 선돌[탑]에도 금줄을 치고 당산굿을 쳤다. 당산제를 지낼 때는 할아버지 당산 앞 상돌에서 제사를 지내고 옹기그릇에 메와 나물, 돼지고기를 넣어 선돌 아래 묻어 주는 관행이 있었다. 매년 당산제를 거행하는 날 아침에 작년에 묻어 둔 제물 단지를 꺼내 속을 살펴 제물의 색깔이 노란색이면 풍년이 들고, 검은 색이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매년 정월 열나흘에 제물 단지를 깨끗하게 씻어서 새로운 제물을 넣고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농점 보기가 당산제의 의례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현황]

당산제는 5년 전에 중단되었으나 어은리 주민들은 선돌을 탑이라는 동일 인식을 하고 있었다.

[의의와 평가]

어은리의 마을 전설과 풍수 형국은 처음 마을 터 잡기를 할 때 어떠한 방식으로 비보를 하고 어떠한 곳에 터 잡기를 하였는지를 보여 주는 교과서 같은 곳이다. 이 마을은 와우 형국이어서 그런지 집안의 정지[부엌]에 소막을 함께 둔 농가 형태였으며, 2월 초하룻날 정주간에 위치한 소막 앞에 상을 차려 놓고 소에게도 밥과 나물을 먹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인터뷰(어은리 노인 회장, 김용기, 남, 75세, 2014. 1. 24)
  • 인터뷰(어은리 주민 한명준, 남, 75세, 201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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