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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715
한자 百中
이칭/별칭 백종,중원,백종절,망혼일,머슴날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덕천리
집필자 황금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 풍속
의례 시기/일시 음력 7월 15일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음력 7월 15일에 행하는 풍속.

[개설]

백중(百中)은 음력 7월 보름으로, 망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를 올리는 날인 동시에 머슴을 쉬게 하는 농업 생산 활동과 관련 있는 날이다. 이를 백종(百種), 중원(中元), 백종절(百種節), 망혼일(亡魂日), 머슴날 등이라고도 한다. 백중날은 여름 농한기로 하루를 쉬면서 놀고, 각 가정에서는 조상을 위하여 차례를 지냈다. 불교에서는 백 가지 과일을 차리고 망친(亡親)의 영혼을 제사하는 우란분재를 한다. 농가에서는 집집마다 김매기를 끝낸 기쁨으로 서로 축하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친목을 도모하는 날로 호미씻이를 한다.

[연원 및 변천]

백중은 인도의 우란분회(盂蘭盆會)에서 시작되었다. 우란분회에는 승려는 물론 속인들도 참가하여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조상에게 올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였다. 『우란분경(盂蘭盆經)』의 설화에 따라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나 고려 시대에는 음력 7월 15일에 절에서 우란분회를 열었다. 그러다가 조선 시대에 접어들면서는 주로 승려들만의 행사가 되었다. 우란분회 때 백 가지의 꽃과 과일을 부처님에게 공양한다고 하여 백종(百種)이라는 말이 생겼다고도 한다.

고려 가요인 「동동(動動)」에도 이날 백 가지 제물을 차려 놓고 임과 함께 저승에서라도 살아가기를 빈다고 하여 망혼일의 의미가 확연히 드러난다. 도교에서는 중원절 또는 귀절(鬼節)이라 한다.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에는 백과(百果)를 가리키는 것 같다고 하였는데, 민간에서는 호미씻이를 하고 나면 발뒤꿈치가 하얗게 되므로 백종(白踵)이라고 하고, 백 가지 씨앗 종자를 갖추었다 하여 백종(百種)이라 한다고 하였다.

조선 시대 성현(成俔)[1439~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백종(百種)이라 하여 백 가지 종류의 제물을 차려 망친의 영혼을 제사한다고 하였다. 17세기 무렵 장유(張維)[1587~1638]는 『계곡집(谿谷集)』에서 “농가에서 김매기가 끝나면 남녀노소가 다 같이 모여서 음식을 먹는 세서회(洗鋤會)를 한다.”고 하였다. 우하영(禹夏永)[1741~1812]의 『천일록(千一錄)』에서도 “산간 지대나 변방 지대를 막론하여 7월 보름날에는 농가의 남녀가 모여서 음식을 차려 놓고 논다.”고 하여 농가의 명절로 인식하였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예전에 순창 지역에서는 백중날 밀개떡을 해서 조상께 천신했다. 밀개떡 만드는 방법은 생밀을 절구에 찧어 껍질을 벗기고 확독에 갈아 실이 죽죽 올라오면 끈기가 생길 때까지 치대어 반죽이 되면 소쿠리나 채반에 호박잎을 깔고 쪄낸다. 팔덕면 덕천리 태촌 마을에서는 조상님께 올리는 밀개떡 위에 맨드라미꽃을 색색으로 썰어 예쁘게 장식해 찌기도 했다.

마지막 논매기인 만두레가 끝나는 시기가 대개 백중 무렵이 된다. 그해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에서 그 집 머슴을 소에 태우고 풍물을 울리면서 주인집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주인은 술과 안주를 내어 일꾼들을 대접한다. 이때 닭을 잡아 죽을 끓이고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해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눠 먹었다. 예전에는 이 무렵에 술을 많이 담가 동네 사람들에게 술을 내었다고 한다.

백중날이 되면 풍장이 울리고 씨름 등을 비롯한 갖가지 흥미 있는 오락과 구경거리가 있어서 농사에 시달렸던 머슴이나 일꾼들은 마냥 즐길 수 있었다. 이는 바로 ‘백중 놀이’를 말하는데, 농촌에서 힘겨운 세벌매기를 끝내고 여흥으로 여러 가지 놀이판을 벌여 온 데서 비롯된 것으로 일종의 마을 잔치인 셈이다. 이맘때면 어느 정도 바쁜 농사일이 끝나고 수확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므로 백중날 하루 동안은 일을 하지 않고 쉬면서 놀고 즐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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