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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752
이칭/별칭 「군벌매기 소리」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
집필자 유장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2004년 - 「방아 타령」 채록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3월 11일연표보기 - 「방아 타령」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
성격 민요|노동요
토리 경토리
출현음 솔·라·도·레·미
기능 구분 농업 노동요
형식 구분 선후창
박자 구조 무장단|중모리
가창자/시연자 이정호[남, 1940년 생]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서 논의 김을 매면서 부르는 노동요.

[개설]

「방아 타령」금과면 매우리 지역 농민들이 논에서 김[풀]을 맬 때 농사일의 노고를 덜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이를 「군벌매기 소리」라고도 한다. 한벌을 매고 10일쯤 지나 ‘군벌’을 매는데, 군벌은 김매기로서는 세 번째 작업이며, 맨손으로는 두 번째 작업이다. 김매기는 그 시기를 놓치면 풀이 너무 자라고 땅도 굳어 “골 샜다”고 한다. 이때는 물을 가두어 마른 논을 적시고 풍물꾼들이 앞에서 흙을 밟아 부드럽게 만들어 주어야 김매기가 수월해진다.

[채록/수집 상황]

2004년 유장영이 쓰고 순창 농요 금과 들소리 보존회에서 간행한 『순창군 금과면 모정 들소리 자료 조사 및 고증 보고서』, 그리고 2004년 김익두·유장영·양진성 등이 집필하고 전라북도에서 발행한 『전라북도 농악·민요·만가』 등에 실려 있다. 이는 유장영이 2004년에 순창군 금과면 모정리(茅亭里)[2008년부터 매우리(梅宇里)로 변경]에 여러 차례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이정호[남, 1940년 생]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방아 타령」 역시 원래는 호무질[호미로 촘촘하게 두벌 김매는 일] 때 불렀던 「문열가」와 같이 박자에 구애되지 않고 느리고 유장(悠長)하게 부르는 소리이다. 「방아 타령」은 선후창 방식으로 불린다. 메기는 소리는 느린 중모리 2장단의 길이에 해당하는데, 받는 소리의 길이는 이것에 비해 세 배 정도 긴 것이 「방아 타령」의 특징이다. ‘경토리’[판소리 우조] 선법인데, ‘솔·도·도’로 4도 상행 종지하는 것이 앞의 두 소리와 다른 점이다. 「늦은 방개 타령」[진안 원평], 「방개 소리」[장수 산서]와 같이 ‘솔·라·도·레·미’의 음계에 ‘경토리’ 선법으로 짜여져 있다. 받는 소리는 원래 진양 혹은 느린 중모리장단이 내재되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내용]

[이정호: 자! 농부님네들!]/ [뒷소리꾼들: 예이!]/ [이정호; 인자, 점심때도 되고 우리가 방애타령을 한번 해 보세!]/ [뒷소리꾼들: 예!]/ [이정호: 우리 보리방애를 한 번 찧는디]

[메]에 헤야 아~하~~ 어 어허 히~루~~방해~야 허어허어~~~헤에~루~놀~세/ [받]에 헤야 아~하~~ 어 어허 히~루~~방해~야 허어허어~~~헤에~루~놀~세/ [메]절그덩 덩덩~잘도나 찧어보세~/ [받]에 헤야 아~하~~ 어 어허 히~루~~방해~야 허어허어~~~헤에~루~놀~세/ [메]이 방애가 누 방애냐 강태공의 조작일세/ [받]에 헤야 아~하~~ 어 어허 히~루~~방해~야 허어허어~~~헤에~루~놀~세/ [메]다 찧었네~ 다 찧어가네 보리 방애를 다 찧었네~/ [받]에 헤야 아~하~~ 어 어허 히~루~~방해~야 허어허어~~~헤에~루~놀~세.

[현황]

「금과 들소리」에 들어 있는 「방아 타령」은 농업 기술이 현대화되면서 김매기는 대부분 제초제에 의존하기 때문에 지금은 농업 현장에서 불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금과 들소리」는 2005년 3월 11일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순창 농요 금과 들소리 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 및 공연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의의와 평가]

「방아 타령」은 기능상 노동요에 해당한다. 메기고 받는 선후창으로 노동에서 오는 피로를 줄이고 공동 작업에서 일의 능률을 극대화하는 효과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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