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821
한자 金果-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 매우 마을 478-3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2년 - 「금과 들소리」 제43회 한국 민속 예술 축제 경연 대회 대통령상 수상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3월 11일연표보기 - 「금과 들소리」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32호로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0년 - 「금과 들소리」 농협 중앙회 문화 복지 재단 주최 대회 대상 수상
성격 노농요
기능 구분 농업 노동요
가창자/시연자 이정호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32호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 일대에서 논농사를 지을 때에 부르던 노동요.

[개설]

「금과 들소리」는 500여 년 전부터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 매우 마을을 중심으로 동전, 대장 들녘에서 불리던 농업 노동요이다. 그러나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기계화 영농으로 인하여 점차 잊혀져가고 있었다. 순창 농요 금과 들소리 보존회에서 우리 민족의 삶과 애환이 서린 「금과 들소리」를 원형 그대로 계승하여 보존해 오고 있다. 「금과 들소리」는 2005년 3월 11일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채록/수집 상황]

「금과 들소리」는 사라져 가는 지역의 전승 농요를 채록·발굴하여 1997년부터 이 지역 노인들이 다시 부르는 노랫소리다. 농사를 지으면서 들소리를 불렀던 경험이 있는 금과 노인회의 노인들을 중심으로 금과 들소리 발굴단[회장 김영조, 당시 75세]을 구성하여 1997년 완벽히 복원하게 되었다. 1998년 10월 2일 순창 농요 금과 들소리 전수회를 창립하였으며, 2002년 제43회 한국 민속 예술 축제 경연 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2007년에는 예능 보유자로 금과면 매우리 이정호[1940~]가 인증되었다. 2008년에는 12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실내 및 야외 연습을 할 수 있는 순창 금과 들소리 전수관을 준공하였다. 「금과 들소리」는 2010년 농협 중앙회 문화 복지 재단에서 주최한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현재에도 전국의 크고 작은 행사에 초청되어 「금과 들소리」를 널리 알리고 있다.

[구성 및 형식]

「금과 들소리」는 1년의 논농사 과정이 들어 있다. 「물푸기 소리」, 「모찌는 소리」, 「모심기 소리[상사 소리]」, 「김매기 소리」, 「장원질 소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김매기 소리」는 다시 「호무질[문열가] 소리」가 있고, 한벌 맬 때 부르는 「연꽃 타령」, 군벌 맬 때 부르는 「담담서름 타령」, 「오호 타령」, 「군벌-방아 타령」, 「만드레-사호 소리」 등으로 구분된다. 「금과 들소리」의 가창 방식은 선후창과 교환창, 그리고 제창 등을 고르게 섞어서 부른다.

[내용]

「금과 들소리」는 농민의 힘든 농사일을 상부상조의 품앗이로서 극복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흥겨운 농요와 풍장굿의 신명을 표출하고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금과 들소리」는 1년 논농사의 각 과정별로 모찌기, 모심기, 김매기, 추수 등의 단계별로 구성되어 있다.

[현황]

농업 기술의 현대화와 기계화로 의하여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공동 작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금과 들소리」 또한 점차 전승이 끊어질 수도 있다. 순창 금과 모정 들소리 보존회에서는 이를 방지하지 위하여 매년 모내기철인 6월 2주째 일요일에 현장에서 공연 행사를 갖고 있다.

[의의와 평가]

현대 농경 문화의 변천 속에서 많은 노동요가 사라지고 있다. 노동요는 힘든 농사일의 품앗이를 할 때 작업의 능률을 높이고 고통을 잊기 위해서 불렀던 것이다. 「금과 들소리」에는 농사짓는 고된 노동의 시름을 흥겨움으로 전환하는 농민들의 긍정적 생활상이 잘 담겨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