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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살린 계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869
한자 -繼母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정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8년 2월 - 「아들을 살린 계모」 『순창의 전설』에 수록
채록지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도사리 지도보기
성격 계모 덕행담|우애담
주요 등장 인물 어머니 권씨|남산이|북산이
모티프 유형 계모의 덕행|형제간의 우애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에서 계모의 덕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아들을 살린 계모」6·25 전쟁이 일어나고 인민 공화국 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부역하게 된 전실 소생을 살리고자 자신이 낳은 자식을 희생시키는데, 결국 전실 자식도 살리고 친자식도 살리는 복으로 이어졌다는 계모 덕행담이다. 또한 모친의 뜻대로 이복형을 살리려고 자신을 희생시키는 우애담이기도 하다.

[채록/수집 상황]

1998년 2월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의 전설』의 110~112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양정욱이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도사리에서 주민 안동 권씨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6·25 전란은 우리 민족에게 크나큰 아픔과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순창도 이 전란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특히 순창은 회문산을 중심으로 인민군의 토벌 작전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그 피해는 더욱 컸으며, 이로 인해 멸문지화를 당한 집안이 많았다. 그 무렵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6·25 전쟁 중에 맥아더 장군에 의한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순창은 3개월의 인민 공화국 치하에서 벗어났다. 인민군 패잔병들과 부역자들은 회문산으로 들어가 항전 태세를 갖추고 있었고, 순창에도 공비 토벌군이 들어왔다.

순창 가막골에서 멀지 않은 한 동네에 중년 과부가 하나 살고 있었다. 그 과부는 남산이라고 불리는 스물다섯 살의 전실 자식과 북산이라고 하는 스물세 살의 친자식을 키우며 오붓하게 살고 있었다. 이 두 형제는 이복형제답지 않게 평소에 우애가 있었고, 어머니 권씨에게도 효성이 지극하여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하였다.

6·25 전쟁이 터지고 인민군이 쳐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은 착하고 똑똑했던 남산이를 추천하여 동네일을 맡겼다. 남산이는 마음이 착했기에 사양을 하지 못하였고, 결국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동네를 위하여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인공이 무너지고 공비 토벌군이 들어와 인공에 부역한 사람들을 추심하여 조사하였다. 남산이도 부역한 일 때문에 토벌 대상에 들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산으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남산이는 처음부터 빨치산이 될 생각은 아니었다. 갑자기 정세가 바뀌는 바람에 우선 몸이나 피해 보자는 마음으로 산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우선 피신하고 있다가 잠잠해지면 집으로 내려갈 생각으로 동네 뒷산 후미진 골에 은신처를 마련해 놓고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집으로 내려와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어느 날, 남산이는 여느 때와 같이 자정 무렵이 되어 토벌군의 눈을 피해 산을 내려와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 어귀쯤에서 갑자기 둔탁한 물체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빨치산을 잡기 위해 잠복하고 있던 토벌군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었다. 남산이는 자발적으로 인공에 부역한 것도 아니고 마을 사람들의 추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부역을 하였지만 원래 천성이 착하고 성품이 정직하여 마을 사람들로부터 원한이나 불평을 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토벌군과 공비 사이에 격렬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인공에 부역한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엄격한 처벌이 취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군 당국에서는 상당 기간 동안 부역자는 자수하라는 포고령을 내리고 자수를 권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산이는 자수한 것이 아니라 체포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남산이는 군 당국의 판단 여하에 따라 즉결 처분될 상황이기도 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남산이의 상황을 딱하게 생각하여 탄식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남산이를 변호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남산이가 잡힌 지 3일째 되던 날 동네에 소문이 퍼졌다. 다음날 순창읍에서 남산이를 처형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남산이가 아무 일 없이 무사히 풀려나기만을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어머니 권씨와 동생 북산이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북산이는 마을 사람들이 마련해 준 자전거를 타고 어머니와 함께 정신없이 토벌군 중대 본부를 찾아갔다. 어머니 권씨는 중대장과 수사관들에게 중대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 팔자가 기구하여 전실 자식이 있는 영감을 얻어서 자식 하나를 더 낳아 키워 그럭저럭 살 만하였는데 박복하여 영감까지 일찍 죽고 여생을 오직 두 자식에게 의지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난리를 만나 자식을 지키지 못하게 되니 한이 가슴에 맺힙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당연히 죗값을 치러야 하겠지만 진실을 밝혀야 하겠기에 이렇게 왔습니다.” 수사관들은 권씨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곧 이어 권씨는 “사실은 아낙의 좁은 소견으로 내가 낳은 자식을 살리기 위해 숨겨 왔던 일입니다. 인공에 부역한 것은 남산이가 아니라 북산이입니다. 죄를 주려거든 북산이에게 주십시오. 그래야 황천에 가서 영감 얼굴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으니 남산이를 내어 주고 북산이를 처벌하십시오.” 하면서 대성통곡을 하다가 혼절까지 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남산이에 대한 처형은 잠시 미뤄졌다. 어머니 권씨의 말 때문에 북산이도 토벌대에 잡혀가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북산이도 시종일관 어머니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부역을 했으니 자신을 잡아가고 형을 방면하라고 주장하였다.

엄동설한이라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인데도 권씨는 나흘 동안이나 실성한 사람처럼 군 막사의 처마 밑을 배회하며 틈만 있으면 수사관을 붙들고 큰아들 남산이는 억울하니 제발 살려 주고 북산이를 대신 벌하여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였다.

결국 토벌군 사령부는 남산이가 부역한 것을 알면서도 그 정상을 참작하여 군부대 사역 30일이라는 벌을 내리고 목숨을 살려 주었다. 어머니의 희생과 용기에 수사관들이 감동한 것이었다. 또한 이복동생이면서 형 남산이를 위해 억울한 죄를 기꺼이 뒤집어쓰고자 했던 북산이의 우애도 수사관들을 감복시켰다.

어머니 권씨가 자기 소생인 북산이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전실 소생인 남산이를 보호하려 한 덕행은 군사령관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래서 남산이에게 면죄부를 내린 것이었다. 난리 통에 목숨 하나 부지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자신과 자신의 친자식을 희생하면서까지 덕을 잃지 않고 행하였기에 얻은 복이었다.

[모티프 분석]

「아들을 살린 계모」의 주요 모티프는 ‘계모의 덕행’, ‘형제간의 우애’ 등이다. 계모가 등장하는 민담은 일반적으로 전실 자식을 박해하고 이복형제들 간의 다툼이나 갈등을 다루는 계모 학대형 설화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아들을 살린 계모」에서는 친자식을 희생하면서까지 전실 자식의 목숨을 구하려는 계모의 덕행을 다루고 있다. 계모의 악행과 대비되는 선행 이야기였기에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며 구전되어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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