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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등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044
한자 八等面
이칭/별칭 팔등방,팔등리방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팔등면(八等面)은 팔등방(八等坊), 팔등리방(八等里坊)이라고도 하였다.

[관련 기록]

1758년(영조 34)에 발간된 『순창군 읍지(淳昌郡邑誌)』에는 팔등리방이 군의 서북쪽 약 3.93㎞[10리]에 있다고 하였다. 1760년에 발간된 『옥천 군지(玉川郡誌)』에는 팔등방이 군의 서북쪽 약 3.93㎞에 있으며 리 6개, 호구(戶口) 278호라고 되어 있다. 영조 대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팔등면은 관아에서 약 7.85㎞[20리] 떨어져 있으며 민호(民戶)[민가] 278호에 남자 375명, 여자 635명이라고 되어 있다.

1789년(정조 13)에 발간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팔등면이며 단곡리(丹谷里)·수솔리(水率里)·월곡리(月谷里)·용계촌(龍溪村)·월성리(月城里)·장소고개리(將所古介里)·사정리(射亭里)·점촌리(店村里) 등 8개리가 있다. 호구는 315호에 인구는 1,227명으로 남자 533명, 여자 694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팔등(八等)이라고 하였으며 서쪽으로 처음이 약 3.93㎞, 끝이 약 5.89㎞[15리]라고 하였다.

[변천]

1914년에 일제가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정리한 『신구 대조 조선 전도 부군면리동 명칭 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에 의하면 과거 순창군 팔등면의 입석리(立石里)·신평리(新坪里)의 일부를 합하여 구룡리(九龍里), 궁산리(弓山里)·구항리(龜項里)·복정리(伏井里)·사정리·월곡리의 일부를 합하여 용산리(龍山里), 죽림촌(竹林村)·신남촌(新南村)·쌍거리(雙巨里)·사정리·월곡리의 일부와 덕진면(德進面) 옥호리(玉壺里)를 합하여 청계리(淸溪里), 운현리(雲峴里)·신기리(新基里)·월곡리의 일부를 합하여 월곡리, 주곡리(舟谷里)·태자리(太子里)·모상동(慕上洞)과 신기리의 일부를 합하여 광암리(廣岩里)로 바꾸었다. 이때 팔등면은 순창군의 덕진면과 합하여 팔덕면(八德面)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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