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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052
한자 仁化面
이칭/별칭 잉화벌방,잉화벌면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정의]

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인화면(仁化面)은 잉화벌방(仍火伐坊) 또는 인화벌면(仍火伐面)이라고도 하였다.

[관련 기록]

1758년(영조 34)에 발간된 『순창군 읍지(淳昌郡邑誌)』에는 잉화벌방이 군의 동북쪽 약 3.93㎞[10리]에 있다고 하였다. 1760년에 발간된 『옥천 군지(玉川郡誌)』에는 동북쪽으로 약 5.89㎞[15리] 떨어져 있으며 리 6개, 호구(戶口) 160호라고 되어 있다. 영조 대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동북쪽에 있는 잉화벌면은 관아에서 약 7.85㎞[20리] 떨어져 있으며 민호(民戶)[민가]는 165호에 남자 265명, 여자 352명이라고 되어 있다.

1789년(정조 13)에 발간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잉화벌면이며 중산리(中山里)·차치리(車峙里)·가작곡리(嘉作谷里)·마흘리(馬屹里)·선달동리(先達洞里)·세룡동리(細龍洞里) 등 6개리가 있다. 호구는 173호, 인구는 636명으로 남자 266명, 여자 370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인화(仁化)라고 하였으며 위치는 북쪽으로 처음이 약 11.78㎞[30리]라고 하였다.

[변천]

1914년 일제가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정리한 『신구 대조 조선 전도 부군면리동 명칭 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에 의하면 과거 순창군 인화면 가작곡(加作谷)과 차치리를 합하여 가성리(加成里), 외마리(外馬里)와 내마리(內馬里)의 일부를 합하여 마흘리, 둔기리(屯基里)·세룡리(細龍里)·선월리(仙月里)를 합하여 세룡리로 하였다. 이때 인화면은 순창군의 호계면(虎溪面)과 합하여 인계면(仁溪面)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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