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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207
한자 鼎鎬
이칭/별칭 한영(漢永),박한영(朴漢永),영호(映湖),석전(石顚)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영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0년연표보기 - 정호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888년 - 정호 출가
활동 시기/일시 1896년 - 정호 구암사에서 개강
활동 시기/일시 1911년 - 정호 조선 불교와 일본 불교 합종 조약 무효화 운동 전개
활동 시기/일시 1913년 - 정호 『해동 불보』 창간
활동 시기/일시 1926년 - 정호 개운사 대원암에서 불교 강의
활동 시기/일시 1929년 - 정호 조선 불교 교정에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31년 - 정호 중앙 불교 전문학교 교장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정호 조선 불교 중앙 총무원 초대 교정으로 선출
몰년 시기/일시 1948년연표보기 - 정호 사망
출생지 정호 출생지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하리 조사 마을
성격 승려|교육자
성별
대표 경력 조선 불교 중앙 총무원 초대 교정

[정의]

근대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활동한 고승이자 교육자.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속성은 박씨. 자는 한영(漢永), 호는 석전(石顚)이다. 석전이란 호는 추사 김정희가 장차 태어날 명승을 위해 지어준 호라고도 전한다. 당호는 영호(映湖)이며 정호(鼎鎬)는 법호이다. 아버지는 박성용(朴聖容)이고 어머니는 진양 강씨(晉陽姜氏)이다

[활동 사항]

1. 구암사 법맥 계승

정호[1870~1948]는 전라북도 완주군 초포면 조사리[지금의 완주군 삼례읍 하리 조사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1888년 전주 태조암(太祖庵)에서 출가, 금산(錦山)의 법제자가 되었다. 1890년 백양사(白羊寺) 환응(幻應) 탄영(坦泳)에게 사교(四敎)[능엄경·기신론·금강경·원각경]를, 1892년 순천 선암사(仙巖寺) 경운(擎雲) 원기(元奇)에게 대교(大敎)[화엄경·염송·전등록]를 배우고, 순창 구암사(龜巖寺)에서 설유(雪乳) 처명(處明)의 법을 받았다. 1896년 구암사에서 개강한 이래 해인사·법주사·대원사·화엄사·범어사 등 전국 각지의 명찰에서 강석(講席)을 열었다. 구암사정호가 일생에 걸쳐 주석(駐錫)하였던 학문적·정신적 고향이다.

구암사에서는 근세 불교사에 우뚝한 이름을 남긴 대종사(大宗師), 대선사(大禪師)가 다수 배출되었다. 조선 후기까지 대체로 화엄종 계열의 법맥이 이어지다가 이후 백파(白坡) 긍선(亘璇)[1767~1852]이 선문(禪門)을 중흥시켜 ‘선문 중흥조’로 일컬어졌다. 긍선은 본디 고창 선운사에서 출가하였으나 이후 줄곧 구암사에 머물면서 『정혜 결사문(定慧結社文)』·『선문수경(禪門手經)』을 저술하였다. 긍선의 법맥을 보면 설파(雪坡)-……백파-설유(雪乳)-설두(雪竇)-정호(鼎鎬)로 이어진다. 그 법통은 구암사 뿐만 아니라 정읍 내장사, 고창 선운사, 장성 백양사, 해남 대흥사에도 전해졌다. 구암사는 순천의 선암사, 해남의 대흥사와 함께 삼각 편대를 이루며 교학 불교, 선불교의 거점이 되었다.

2. 불교 혁신 운동

정호는 1908년 시들어 가는 조선 불교를 혁신하려는 뜻을 품고, 서울에 가서 교단 개혁을 위해 노력하였다. 1911년 해인사 주지 이회광(李晦光)이 일본 조동종(曹洞宗)과 연합, 조선 불교와 일본 불교를 합종하려는 조약을 체결하자, 한용운(韓龍雲)·진진응(陳震應)·송금봉(宋錦峯)과 함께 일제의 조선 불교 말살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 그 조약을 무효화하고 조선의 불교 전통이 임제종(臨濟宗)에 있음을 내외에 천명하였다.

1913년에는 불교 전문지 『해동 불보(海東佛報)』를 창간, 불교계의 자각 운동, 개혁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4년 이후 고등 불교 강숙(高等佛敎講塾)과 중앙 불교 학림 등에서 강의를 맡아 후학들을 열정적으로 지도하였다. 1926년부터 서울 안암동에 있는 개운사(開運寺) 대원암(大圓庵)에서 불교를 강의하면서 불교계의 영재들을 양성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문인으로는 만암(曼庵)·운성(雲性)·운기(雲起)·청우(靑牛)·남곡(南谷)·청담(靑潭)·운허(耘虛)·일붕(一鵬) 등 다수가 있고, 최남선(崔南善)·정인보(鄭寅普) 등 당대의 국학자와 이광수(李光洙)·서정주(徐廷柱)·신석정(辛夕汀)·조지훈(趙芝薰)·조종현(趙宗玄)·김달진(金達鎭) 등 문인들도 석전의 문인 그룹에 속한다.

1929년 조선 불교 교정(敎正)에 취임하여 조선 불교 최고 지도자로서 종단을 이끌었으며, 1931년 동국 대학교의 전신인 중앙 불교 전문학교 교장이 되어 불교 인재 양성에 힘썼다. 1945년 8·15 광복 후 조선 불교 중앙 총무원의 초대 교정으로 선출되어 다시 새 종단을 이끌었다. 1948년 정읍 내장사로 옮겨 갔다가 그해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정호는 교(敎)와 선(禪)에 두루 밝았다. 송금봉·진진응과 함께 근대의 3대 강백(講伯)으로 꼽힌다. 외전(外典)에도 밝아 유가 경전과 노장서(老莊書)에 두루 통하였다. 시문에 뛰어나 윤희구(尹喜求)·여규형(呂圭亨)·홍명희(洪命憙)·오세창(吳世昌)·권동진(權東鎭)·최남선·정인보·변영로(卞榮魯) 등과 교분이 두터웠다. 평소 화엄적(華嚴的) 세계관을 이상으로 여겼으며 사회와 대중을 안목에 두고 불교를 생각하고, 불교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저술로 『석전 시초(石顚詩鈔)』·『석림 수필(石林隨筆)』·『석림초(石林抄)』·『계학 약전(戒學約詮)』·『정주 사산비명(精註四山碑銘)』 등이 있다.

[묘소]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동 내장사에 부도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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