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5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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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明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집필자 | 육민수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양력 4월 5일 무렵 농사일을 시작한다는 절기 풍습.
[개설]
청명(淸明) 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닌 말로 춘분(春分)과 곡우(穀雨)의 사이에 들며, 한식과 같은 날이거나 전날이 된다. 절기상 한식은 청명과 같은 날이거나 전후해서 있기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일반”이라는 속담도 있다. 청명은 새롭게 불을 나누어 주는 ‘사화(賜火)’를 행한 날이며 본격적인 농사 준비를 하고, 이날 날씨가 좋으면 한 해 농사가 잘된다는 믿음 때문에 특히 좋은 날씨가 되기를 기대하던 날이었다.
[연원 및 변천]
청명절에 불을 나누어 준 것은 중국에서 유래한 듯하다. 홍석모(洪錫謨)의 『도하세시기(都下歲時記)』에는 “청명절에 맞추어 늦봄이 시작되니 불씨 바꾸는 좋은 규범 주나라 때 시작했네. 느릅과 버들의 푸른 연기 궁궐에서 일어나고, 새 불씨 나누어 주는 하인들 급히 달려가네.”라고 적고 있는데, 이를 통해 청명에 불씨를 새로 나누어 주는 풍속이 주나라에서 비롯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서 불을 일으켜 각 관청에 나누어 주었으니 이는 곧 ‘주관(周官)에서 불을 내었다.’와 ‘당송(唐宋) 때에 불을 나누어 주게 하였다.’는 제도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라는 청명조(淸明條)의 기록을 통해서도 불 나누어 주는 풍속이 주나라에서 기원하여 당송으로 전래하였음을 적고 있다. 옛날에는 불씨를 오래 두고 바꾸지 않으면 불꽃이 거세지고 양기가 지나쳐서 여질(癘疾)[전염성 열병]이 생기기 때문에 때에 따라 불을 바꾸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에 따라 봄철에는 청명에 임금이 불을 하사하였다.
조선 후기의 기록인 『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동국세시기』 청명조에는, 청명에 임금이 불을 하사하는 ‘사화(賜火)’의 풍속이 기록되어 있다. 즉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면 임금은 다시 이 불을 정승, 판서 등의 문무백관, 360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 주고, 고을 수령들은 이를 한식에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열양세시기』에도 청명일에 내병조(內兵曹)에서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에 불을 붙여 임금께 올리면 그 불을 내외 여러 관청과 관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불이 너무나 흔하게 된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풍속이 거의 사라졌다.
[절차]
청명 은 대부분의 농가에서 이날을 기해 봄 일을 시작하였다.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 시작하는 등 농사를 준비하였는데, 이날 날씨가 좋으면 한 해 농사가 잘 된다는 속신이 있었다. 청명의 의미는 날씨가 좋다는 것인데, 이 말 뜻대로 날씨가 좋아야 농사를 짓기가 수월했던 것이다. 이와 동궤에서 청명일에 남풍이 들면 풍년이 든다고 생각하였다. 청명은 또 새롭게 불을 나누어 주는 날이었다. 오래된 불씨는 전염성 열병을 일으킨다는 믿음이 있어 때에 따라 불을 갈아주었는데, 봄철에는 청명에 불을 나누어 주었다.
1993년 서울특별시에서 간행한 『서울 민속 대관』의 「놀이의 실상 일람」에는 도봉구 번 2동에 5대째 거주하는 주민 윤수환[남, 66]에게서 채록한 청명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설날에 성묘를 가지 않는 대신 청명일에 성묘를 갔다. 이날은 성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묘를 가꾸기도 하였다. 묘지의 잡초를 뽑아 주고 잔디 밥을 주었으며, 잔디가 상한 곳은 떼를 입히고 잔디를 고르게 깎아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청명 에는 청명주(淸明酒)를 담는다. 청명에 밑술을 담그고 다시 보름이 지나 곡우에 덧술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21일이 되어야 비로소 술이 되는데 단맛이 좋아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술이었다고 한다. 청명주는 조선 후기에 유행하였다. 술 빚는 방법은 찹쌀 서 되를 잘 씻어서 이를 가루로 내어 물 한 놋동이에 풀고 죽을 쑤어 차게 식힌 다음, 곱게 빻아 체로 친 뒤에 누룩가루 세 홉과 밀가루 한 홉을 섞어 빚어 밑술과 함께 빚어 넣는다. 술항아리는 찬 곳에 두고, 이레 후에 위에 뜬 것을 버리고 맑아지면 청주로 떠서 마신다.
또한 청명은 한식과 날짜가 하루 차이가 나거나 겹치기 때문에 이때가 손 없는 날이라 하여 묘소를 손질하였다. 묫자리를 정비하거나 떼를 새롭게 입히는 등의 일도 하였다. 청명은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이 지키고 있는 대표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