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5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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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冬至 |
이칭/별칭 | 수세,아세,작은설,이장,지일,호랑이 장가가는 날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집필자 | 육민수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에서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에 지내는 풍속.
[개설]
동지(冬至) 는 글자 그대로 겨울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태양이 가장 남쪽으로 기울어져 밤의 길이가 일 년 중 가장 긴 날이다. 동지 때부터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양의 세력이 점점 강해지므로 태양의 부활로 여길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해가 바뀐다고 보아 설날에 버금간다는 뜻의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 하였다. 동지 때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도 이로부터 형성된 것이다. 동지는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인데, 동지가 음력 동짓달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라고 하였다. 수세(首歲), 이장(履長), 지일(至日), 호랑이 장가가는 날 등의 이칭이 있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는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 동지를 역(曆)의 시작으로 보는 당(唐)나라의 선명력(宣明曆)을 사용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아 1309년(충선왕 원년)에 원(元)나라의 수시력(授時曆)으로 역법이 바뀔 때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동지를 설로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동지를 설과 함께 중요한 날로 생각하여 궁중에서는 회례연(會禮宴)을 거행하였고, 동지사(冬至使)를 중국에 파견하기도 하였다. 이밖에 성균관과 사학 유생에게 시험을 보이고 귤을 나누어 주는 황감제(黃柑製)라는 과거를 실시하였으며, 동지 하례를 지내고 버선을 선물하는 동지헌말(冬至獻襪)도 하였다.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 것이 대표적 풍속이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 귀신이 되어 붉은 팥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서 그를 물리친다.”라고 그 연원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다.
[절차]
도봉구에서는 동지에 팥죽을 먹었다. 팥죽은 팥을 고아서 흐물흐물해지면 체로 거른다. 여기에 쌀을 넣고 저으며 푹 끓인 후 찹쌀로 단자를 만들어 넣는다. 이를 새알심, 혹은 용술렝이, 옹심이, 곤드레미, 새시미 등이라고도 한다. 새알심은 찹쌀가루를 새알 크기 정도로 뭉쳐 동그랗게 만든다. 팥죽을 먹을 때는 나이 수대로 새알심을 넣어서 먹는다. 팥죽을 만들어서 동지 고사를 지내고 장독간, 부뚜막, 헛간 등에 한 그릇씩 놓아두었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함께 먹는다. 집 바깥의 사방에 뿌린 뒤에 먹기도 하였다. 팥죽을 사당에 놓는 것은 천신(薦新)의 의미이며, 집 곳곳에 놓는 것은 팥의 붉은색이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한다고 믿은 것이다. 동지 중 음력 동짓달 초순에 동지가 드는 애동지에는 아이들에게 나쁘다고 하여 팥죽을 쑤지 않는 집이 많다.
1993년 서울특별시에서 간행한 『서울 민속 대관』의 「놀이의 실상 일람」에서 도봉구 번 2동에 5대째 거주하는 주민 윤수환[남, 66]은, “동짓날에는 팥죽을 끓여 먹는다. 애동지에는 애들이 많이 상하고, 노동지에는 노인들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애동지나 노동지에 상관없이 팥죽을 끓여 먹는다. …… 팥죽을 끓이면 고사를 지낼 때와 마찬가지로 집 안의 여러 곳에 한 그릇씩 놓는다. 즉 성주와 터주에게 올리고 부엌, 대문, 헛간 등에도 1그릇씩 놓는다. 이때 술도 한 잔 부어서 올리는데, 술을 조금씩 뿌리는 일은 있어도 팥죽을 뿌리는 일은 없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동지 에는 팥의 붉은색이 양(陽)의 색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어 팥죽을 쑤어 먹는다. 팥죽에 찹쌀로 만든 새알심을 나이 숫자만큼 넣어 먹는다. 동지 때 동지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는 믿음이 있다. 동지에는 뱀 사(蛇) 자를 써서 거꾸로 붙이면 잡귀를 막는다고도 생각하였다. 또 동지에 일기가 좋으면 다음 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이 많이 죽고,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