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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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竺寺木造釋迦三尊佛-釋迦佛-彌勒菩薩-提和竭羅菩薩- |
이칭/별칭 | 천축사 대웅전 석가 삼존불,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 좌상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길 92-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경섭 |
제작 시기/일시 | 1573년~1619년 - 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석가불,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 제작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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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713년 - 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석가불,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 노적사에서 민지사로 이전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13년 - 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석가불,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 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3년 5월 23일 - 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석가불,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47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석가불,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장처 | 천축사 -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549 |
원소재지 | 노적사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331 |
성격 | 불상 |
재질 | 나무 |
크기(높이) | 88.5㎝[높이]|38.4㎝[어깨너비] |
소유자 | 천축사 |
관리자 | 천축사 |
문화재 지정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천축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석가삼존불상.
[개설]
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天竺寺木造釋迦三尊佛像)(석가불,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은 미륵보살(彌勒菩薩)·석가모니불·제화갈라보살(提華褐羅菩薩) 삼존불을 나무로 조각하고 외부를 금으로 도금한 목조불 좌상이다. 조선 시대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의 전형적인 불상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현재 천축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 최근 석가모니불 좌상의 복장(腹藏)에서 불상의 중수 발원문(發願文) 2기, 불교 경전(佛敎經典), 불교 다라니(陀羅尼) 등의 복장물(腹藏物)이 발견되어 불상의 조성 시기가 어느 정도 밝혀지게 되었다. 2013년 5월 23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4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석가불,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은 중앙에 오른손을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석가모니, 좌우에 동일하게 화려한 보관을 쓰고 엄지와 중지를 서로 맞댄 손 모양을 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을 수평으로 나란히 배치하였다. 모두 팔각 대좌 위에 앉아 있으며, 두광(頭光)이나 신광(身光)은 갖추지 않았다.
석가모니불 좌상은 전체 높이 88.5㎝, 어깨너비 38.4㎝로 중형 불상에 속하며, 좌우 보살은 이보다 3~4㎝ 정도 차이로 비슷하지만 보관이 커져 신체는 본존 석가모니불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게 보인다. 자세는 모두 가부좌의 정자세로 허리를 직각으로 세우고 얼굴을 조금 숙여 시선이 아래를 주시하고 있는 형상이다. 고개 숙인 모습으로 보아 불단의 높이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가모니불의 얼굴은 신체와 비교해 1 대 3.2 정도로 조금 큰 편이며, 양쪽 보살들의 얼굴은 이보다 조금 더 크다. 얼굴은 앞뒤의 폭이 많이 커져 정면의 얼굴과는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얼굴과 신체에 비례해 삼도(三道)가 표현된 목은 짧게 표현되었다. 콧날은 좁고 곧게 뻗어 있으며, 입가에는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신체는 통통하고 굴곡 없이 팽팽하며, 튀어나온 복부와 팔 등에서는 원통형에 가깝게 팽만해 있다.
두 어깨를 감싸 안고 흘러내리는 천의는 전면에만 주름을 표현하고 측면과 뒷면은 최대한 간락하게 표현하였다. 흘러내리는 두툼한 천의 주름은 원형과 타원형으로 형식적인 묘사가 강하다. 직선적으로 흘러내린 대의(大衣)와 가슴에서 수평으로 묘사한 속천의[僧脚崎], 무릎 아래의 반복적인 주름처리 등 세 불상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17세기 전반의 불상 조각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복장에서 발견된 두 장의 발원문은 불상의 중수 사실을 기록한 원문이며, 조성 원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첫 번째 1713년 발원문은 만력(萬曆)[1573년~1619년] 연간에 조성한 삼불(三佛)을 개금하고 중수하여 민지사(閔漬寺)로 이전하였다는 점과 각 불상의 명칭을 명시한다. 또한 진열(進悅)·영희(靈熙)·태원(太元)·처림(處林)·청휘(淸徽) 등 중수에 참여하였던 조각승(彫刻僧)과 불화승(佛畵僧)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천축사 목조 석가 삼존불상은 1573년에서 1619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1730년 발원문은 황금을 시주 받아 개금불사한 후 서암사(西岩寺)에 봉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17년 만에 민지사[서암사의 옛 이름]에 봉안되어 있던 삼불상을 다시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의의와 평가]
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석가불,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은 1573년~1619년 사이에 조성되어 노적사(露積寺)에 봉안되었으며, 노적사에서 1713년에서 중수하여 민지사로 옮겨져 봉안되었다. 1730년에 서암사에서 다시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이후 서울 흥천사(興天寺)로 옮겨졌다가[1943년 간행된 『봉은 본말사지』], 현재의 천축사 대웅전에 봉안되는 등 여러 번 봉안처를 옮겨 다녔다.
또렷하고 균형 잡힌 이목구비, 안정된 인상, 팽팽하고 풍만한 신체의 질감, 간략화 되고 형식화된 천의 표현 등에서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 목조 불상의 한 양식을 살펴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또한 발원문에 언급된 조각승과 불화승들은 18세기 전반 불교 미술의 작가 계보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단서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