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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054
한자 佛敎
분야 종교/불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허인섭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개설]

우리나라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래된 것은 4세기 말로서, 당시 고구려·백제·신라는 부족 연맹체를 벗어나 강력한 중앙 집권적 군주 국가로 도약할 차비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들어와 종래의 씨족 중심적 세계관과 종교관을 대체하는 보편적 윤리와 이념을 제공하였다.

고구려의 불교는 372년(소수림왕 2) 중국 전진(前秦) 왕 부견(符堅)이 순도(順道)라는 승려와 함께 불상과 경전을 보내 줌으로써 시작되었다. 백제의 경우 384년(침류왕 원년) 동진(東晉)으로부터 마라난타라는 승려가 와서 불법을 전했으며, 신라에서는 눌지왕 때[417~458] 이미 불교가 들어왔으나 공인을 받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법흥왕 때인 527년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고려를 세운 왕건은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많은 사찰들을 세웠으며, 선종과 교종을 모두 지원하였다. 따라서 고려 왕조 대대로 불교와 왕실은 태조의 정책에 따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 승과를 통과한 선종과 교종의 승려들에게는 마치 관직과도 같이 각각 법계(法階)가 수여되었다. 승려들에게 주어졌던 최고의 명예직은 왕사(王師)와 국사(國師)로서, 국가 종교로서의 고려 불교의 위치를 잘 반영하는 제도였다.

조선 시대로 들어오면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정책에 따라 불교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많은 승려들이 환속을 하였고, 국가의 지원을 받는 사찰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종파들이 통폐합되는가 하면, 승과 제도마저 철폐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불교는 조선 총독부의 사찰령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불교에 대한 탄압적인 조치들이 폐지됨에 따라 승려들은 자유로운 종교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승가(僧家)는 친일 세력과 한국 불교의 독립성 및 고유한 전통을 지키려는 승려들로 나누어져 갈등을 겪었는데, 특히 일본 승려들의 영향으로 결혼을 하는 대처승과 전통적인 비구승의 구별도 생기게 되면서 해방 후 갈등의 한 요인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한국 불교는 대처승 종단인 한국 불교 태고종과 한국 불교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비구승 종단인 대한 불교 조계종의 양대 종단이 있으며, 그밖에 최근에 생긴 군소 종파들이 존재하고 있다.

[변천]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불교가 전래된 정확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 오래된 사찰들인 만월암, 광륜사, 석굴암, 천축사 등이 대부분 신라 문무왕 때인 672년이나 673년에 창건되었다. 이를 통해 도봉구에는 이미 신라 시대부터 불교가 전파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원통사는 신라 말기인 863년(경문왕 3)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도선 국사는 국토의 주요한 지점을 선택하여 절을 지었는데, 고려 조정에서는 이것을 호국 비보사찰이라고 하여 중요시하고 지원하였다. 신라 시대에 지어진 사찰들은 이후 전란이나 화재 등으로 소실되기도 했지만 계속적인 복원과 중창을 거쳐 현재까지 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와서도 천진사[대한 불교 조동종], 자현암 같은 절이 세워졌으며, 현대에 들어와서도 성국사, 정혜사, 금강사, 법성암 등 지속적으로 사찰이 지어져 도봉구의 유구한 불교의 역사를 말해준다.

[불교 문화재]

서울특별시 도봉구 내에 있는 불교 문화재로는 조선 시대 불교 회화인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불도[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292호]와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293호], 조선 시대 불교 조각인 만월암 석불 좌상(滿月庵石佛坐像)[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121호]가 있다.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불도는 19세기 서울 경기 지방의 대표적 화승인 경선당(慶船堂) 응석(應碩)이 편수(片手)를 맡아 환감(幻鑑), 혜조(慧照), 경림(璟林), 탄인(呑仁), 창오(昌悟) 등이 제작하였다. 상궁 박씨와 김씨 등이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위하여 시주한 불화이다. 가로가 긴 화면이 상하로 구분되어 상단에는 삼신불을, 하단에는 보살들을 배열한 구도로서 독특한 도상을 보여준다.

천축사 비로자나 삼신 괘불도는 화면에 손상이 없고, 화기가 완전하게 남아있으며 채색도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등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또한 괘불(掛佛)로서 규모가 크지 않고 연대도 오래되지 않았으나 삼신불을 그린 구성과 양식 등이 19세기 서울·경기 지방 괘불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제작한 하운당(河雲堂) 유경(有鏡)의 남아있는 작품이 희귀하여, 그의 독특한 불화 양식 규명과 19세기 불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만월보전 안의 만월암 석불 좌상(滿月庵 石佛坐像)은 1999년 5월 19일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121호로 지정된 조선 시대의 불상이다. 아담한 얼굴에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며, 왼손에 약합(藥盒)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임을 알 수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통견(通肩)의 법의에 보이는 옷 주름 표현 등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현황]

1998년 5월 현재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불교 사찰 및 신자 수는 43개 사찰, 3만 559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종파별로는 대한 불교 조계종 29개 2만 6590명, 한국 불교 태고종 10개 5,970명, 대한 불교 법화종 2개 2,000명, 기타 2개 1,030명 등이다.

@@GC04901054_01_도봉구 관내 불교 종파별 현황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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