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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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耳巖面淄川事件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597년 8월~9월 - 이암면 치천 사건 발생|종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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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시기/일시 | 1597년 8월 16일 - 일본군 남원성 함락 |
발생|시작 장소 | 치천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천리 |
종결 장소 | 치천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천리 |
성격 | 순창군민 학살 사건 |
[정의]
1597년 8월~9월에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천리 일대에서 일본인이 일으킨 순창군민 학살 사건.
[역사적 배경]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하고 일본군은 전라도 방면으로 대거 들어오게 된다. 8월 16일에 남원성을 함락한 일본군의 주력 부대는 전주로 향하게 되고, 일부 부대는 두 갈래로 순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 중 한 갈래는 순창읍내로 들어오고, 다른 한 갈래는 팔덕면 방면으로 들어왔다.
[경과]
당시 순창 군수 배경남(裵慶男)은 가족과 함께 산속으로 도망하였고, 일본군 500여 명이 무인지경으로 순창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읍민들과 주변 마을 사람들은 피난 짐을 꾸릴 시간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하였다.
[결과]
일본군들은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재산을 약탈하였으며, 병사를 나누어 백성들을 학살하였다. 이때 일부 사람들이 북쪽인 이암면 치천리로 도망하였는데, 치천의 물가에서 모두 학살당하였다. 이암면 치천리는 지금의 구림면 금천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