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782 |
---|---|
한자 | 大母山城城- |
이칭/별칭 | 「홀어미산성 성 쌓기 내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 |
집필자 | 박정미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2년 - 「대모산성 성 쌓기 내기」 『순창군지』에 수록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9년 - 「대모산성 성 쌓기 내기」 『한국 구비 문학 대계』5-1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8년 2월 - 「대모산성 성 쌓기 내기」 『순창의 전설』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9년 12월 - 「대모산성 성 쌓기 내기」 『순창 문화유산 탐구』Ⅱ에 수록 |
관련 지명 | 대모산성, 대모산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 |
성격 | 축성담|경쟁담 |
주요 등장 인물 | 양씨 부인|설씨 총각 |
모티프 유형 | 오뉘 힘내기|성 쌓기 내기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에 있는 대모산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대모산성 성 쌓기 내기」는 순창읍 백산리에 있는 대모산성[일명 백산리 산성]의 축성 과정에서 양씨 부인과 설씨 총각이 성을 쌓는 일과 한양을 다녀오는 일로 내기를 하였다는 축성담이자 경쟁담이다. 이를 「홀어미산성 성 쌓기 내기」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 순창군에서 간행한 『순창군지』에 실려 있고, 1989년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에서 펴낸 『한국 구비 문학 대계』5-1 전라북도 남원군 편에도 수록되어 있다. 또한 1998년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의 전설』과 1999년 순창 문화원에서 발행한 『순창 문화유산 탐구』Ⅱ에도 실려 있는 등 다수의 문헌에서 이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내용]
대모산에 젊어서 과부가 된 양씨 부인이 홀로 살고 있었는데,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던 설씨 총각이 양씨 부인을 연모하여 같이 살 것을 종용하였다. 절개를 지키고자 재가를 할 생각이 전혀 없던 양씨 부인은 그런 말을 하지 말라며 정색하고 거절하였다. 그러나 설씨 총각은 막무가내로 덤벼들었다. 양씨 부인은 그가 보통으로는 설득할 수 없음을 알고 내기를 해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래서 양씨 부인은 대모산에 성을 쌓고, 설씨 총각은 나막신을 신고 한양에 가서 남대문 문패를 떼어 오는 것을 누가 먼저 하는가 내기를 하였다. 만약 설씨 총각이 한양에 갔다 오기 전에 양씨 부인이 성을 다 쌓으면 결혼을 안 할 것이고, 성을 쌓지 못하면 결혼을 허락하기로 한 것이다.
내기는 바로 다음날 시작되었다. 양씨 부인은 치마폭에 돌을 담아 나르며 열심히 성을 쌓았다. 마지막 돌 한 덩이만을 더 올려놓으면 성이 완성되려는 찰나에 한양을 다녀온 설씨 총각이 남대문 문패를 들고 도착하였다. 결국 양씨 부인은 내기에서 지고 말았다.
설씨 총각은 양씨 부인에게 자기와 결혼해 줄 것을 강요하였다. 어쩔 수 없이 말을 들어주어야 했던 양씨 부인은 수절을 하면서 살기로 하였는데 정절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양씨 부인은 돌을 나르던 치마를 뒤집어쓰고 대모산 아래 흐르는 강물에 몸을 날려 빠져 죽고 말았다.
[모티프 분석]
「대모산성 성 쌓기 내기」의 주요 모티프는 ‘오뉘 힘내기’, ‘성 쌓기 내기’이다. 대개 축성 설화에서 성 쌓기 내기에서 진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는 경쟁 관계에 있는 두 세력 간의 대립과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오뉘 힘내기 전설에서는 남자[오빠 또는 동생]가 내기에서 이기고 있는데, 이는 남아 선호 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대모산성 성 쌓기 내기」에서도 양씨 부인이 내기에 지자 수절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