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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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百英 |
이칭/별칭 | 홍언(洪彦),화동(花洞),임백균(任伯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최영성 |
[정의]
조선 전기 순창 군수를 지낸 문관.
[가계]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홍언(洪彦), 호는 화동(花洞), 초명(初名)은 임백균(任伯鈞). 할아버지는 관산군(冠山君) 임광세(任光世), 아버지는 좌통례(左通禮)를 지낸 국담(菊潭) 임희중(任希重)이다. 전라 좌의병장 임계영(任啓英)의 넷째 형이다.
[활동 사항]
임백영(任百英)[1525~1595]은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축내리에서 출생하였다. 1561년(명종 16) 식년 문과 병과에 급제한 뒤 예조 정랑, 경연 참찬관(經筵參贊官), 춘추관 수찬관(春秋館修撰官),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 등을 거쳐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위계(位階)에 올랐다. 뒤에 김해 도호부사(金海都護府使)를 거쳐 1590년부터 1592년까지 순창 군수를 지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고령으로 직접 전장(戰場)에 뛰어들지는 못하였지만, 아우 임계영 및 김익복(金益福)·박광전(朴光前) 등과 협의하여 전략을 지시하는 한편 사재(私財)를 풀어 군량을 보급하는 등 많은 후원을 하였다. 임백영은 문장(文章)과 병략(兵略)에 뛰어났다. 1595년(선조 28)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