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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민 유격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616
한자 朝鮮人民遊擊隊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철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빨치산 부대

[정의]

6·25 전쟁 전후 전라남도 순창군 화문산 일대에서 활동했던 빨치산 부대.

[개설]

조선 인민 유격대는 발생 초기에는 기층적이며 자발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49년 6월 남로당과 북로당이 합쳐 조선 노동당이 결성되고, 조국 통일 민주주의 전선[조국 전선]이 발족되면서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사업 지원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압도되었다. 이에 조직적 체계가 정비되었고, 상층 지도부의 선도에 따르는 방향으로 변모하였다.

조선 인민 유격대는 주로 지리산 유격 부대 등을 일원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기구로서 지휘 계통은 남조선 노동당의 박헌영(朴憲永)이승엽(李承燁)에 속했다. 오대산 지구를 맡은 제1 병단과 지리산 지구의 제2 병단, 태백산 지구의 제3 병단으로 편성되었다. 제1 병단은 이호제(李昊濟), 제2 병단은 이현상(李鉉相), 제3 병단은 김달삼(金達三)과 남도부(南道富)가 각각 책임자가 되었다.

[변천]

6·25 전쟁 개시와 함께 전라북도 지역에서는 조선 노동당 전북도당 위원장 방준표(方俊杓)가 사령관이 되어 순창의 회문산에 본부를 두고 조선 인민 유격대 전북도당을 구성했다. 1950년 11월경에는 남로당 출신의 이승엽이 강원도 평강군 후평에서 후퇴해 오는 인민군과 당 간부, 입산자들을 유격 부대로 편제하여 남하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현상의 지리산 빨치산 부대도 북으로 후퇴하다가 후평에서 조선 인민 유격대 독립 4지대로 부대를 정비하여 다시 남하하였다. 독립 4지대는 남하하는 도중인 1950년 12월부터 부대 명칭을 조선 인민 유격대 남부군으로 바꾸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1951년 5월 중순경 덕유산 송치골에서는 전남도당·전북도당·경남도당·경북도당·충남도당·충북도당 등 남한 6개 도당 위원장 회의가 열렸다. 여기에서 대한민국 영역의 조선 인민 유격대를 전남도당과 경북도당만 제외하고 일원적으로 편성해 지리산을 거점으로 한 남부군(南部軍) 산하에 둔다는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 로명선이라는 가명으로 남부군 사령관에 취임한 이현상은 주력 부대를 이끌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통합된 조선 인민 유격대는 사단제로 재편되어 충청남도는 68사단, 전라북도 북부는 45사단, 전라북도 남부는 46사단과 53사단, 경상남도는 57사단, 남부군은 81사단·92사단·602사단으로 편제되었다. 각 사단은 『승리의 길』이라는 제호로 등사판 진중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유격대에 의한 순창 지역의 희생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첫째, 1950년 7월 말부터 9월경에 마을 유지, 경찰 등 우익 인사들이 지방 좌익이나 유격대에 붙잡혀 총살 등으로 3명이 희생되었다. 둘째, 1950년 9월 28일 유엔군이 북진할 때 지방 좌익과 유격대가 우익 인사, 마을 유지, 공직자, 이장 등을 소집한 후 구타 또는 총살하여 13명이 희생되었다. 셋째, 1950년 10월부터 1951년 5월경까지 회문산, 국사봉, 용궐산[지명 변경 전 명칭: 용골산]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한 유격대에 의해 대한 청년 단원, 군경 가족, 마을 주민 등 27명이 희생당하였다. 지역별로는 국사봉, 회문산, 용궐산 등 1950년 9·28 수복 이후에도 ‘미수복 지역’으로 전북도당 유격대가 머물렀던 구림면, 동계면, 복흥면, 쌍치면이 전체 희생의 75%를 차지하였다.

전북도당[유격대]은 1951년 4월에 27부대·39부대·478부대로 개편하였다. 이 중 27부대는 비무장 대원으로 편성된 보급 전문 부대였고, 36부대는 독수리 병단·기포 병단·보위 병단이 기간이 된 전투 부대였다. 478부대는 벼락 병단·탱크 병단이 기간이 된 전투 부대였고 각 부대 병력은 150명 전후였다.

전북도당 사령부를 운장산을 옮기면서 군경 토벌대의 공세로 다시 부대를 개편하여 전라북도 북부를 관장하는 45연대[연대장 황학소]에 700명 병력, 남부를 관장하는 46연대[연대장 백암] 그리고 보위 대장으로 장돌진을 임명하였다. 조선 노동당 전북도당 위원장 방준표는 지리산을 거점으로 45·46연대를 관장하였다. 조선 노동당 전북도당 45·46연대는 1951년 7월 덕유산 6개 도당 회의를 거쳐 남부군 산하로 흡수되었다.

[의의와 평가]

순창 지역의 유격대는 험준한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 전술로 통신 체계 교란, 관공서 습격, 우익 세력 살상, 좌익 사상 선전·교육 등 해방 정국과 전선의 후방 교란 작전을 수행하였다. 대한민국에서 조선 인민 유격대에 대한 언급은 6월 항쟁 이전까지는 금기시되어 왔다. 전투사 연구 차원의 전적 정리만이 예외였다. 특히 조선 인민 유격대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맞추어져 포악한 모습으로만 인식되었다. 최근에 들어 빨치산 등이 연구되면서 조선 인민 유격대에 대한 연구도 함께 병행되고 있다. 다만, 인물 연구에서 이현상에 집중되어 있는 부분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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