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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708
한자 金克忸墓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 산36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서홍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436년 - 김극뉴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496년 - 김극뉴 사망
건립 시기/일시 1534년연표보기 - 김극뉴 묘비 건립
현 소재지 김극뉴 묘비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 산36 지도보기
성격 묘비
관련 인물 김극뉴(金克忸)[1436~1496]
재질 화강암[대석]|대리석[비신·개석]
크기(높이,너비,두께) 132㎝[높이]|70㎝[너비]|14㎝[두께]
소유자 광산 김씨 종중
관리자 광산 김씨 종중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에 있는 조선 전기 김극뉴의 묘비.

[개설]

김극뉴(金克忸)[1436~1496]는 본관이 광산(光山)이고, 자는 의백(義伯)이다. 아버지는 광산 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며, 어머니는 전첨(典籤) 황보신(黃保身)의 딸로 장수 황씨(長水黃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함양 박씨(咸陽朴氏)박이(朴肄)의 딸이고, 두 번째 부인은 의령 남씨(宜寧南氏)이다.

처음 음사로 청진 전직이 되었다가 찰방이 되었고, 1468년 춘장방 문과에 병과 23인으로 급제하여 종부시 정이 되었다. 그 후 의빈부 경력이 되어 광릉군 이극배의 종사관으로 승진되어 남방의 기근을 구제하는 데 매우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그 공로로 절충장군에 승진되어 오랫동안 판결사로 있다가 병조 참의, 예조 참의, 형조 참의, 공조 참의를 거쳐 사간원 대사간에 이르렀다. 재직 중 순직하자 세조가 사재(私財)와 부의(賻儀)를 내렸다. 예조 참판 겸 홍문관 제학 동지성균관사 광원군(禮曹參判兼弘文館提學同知成均館事光原君)에 추증되었다.

[건립 경위]

전하는 말에 의하면 김극뉴의 묘는 조선 8대 명당이라 하며, 묘 주변은 원래 김극뉴의 처가인 함양 박씨(咸陽朴氏) 소유였다고 한다. 그런데 장인이 후사 없이 세상을 뜨면서 맨 위에 묘를 쓰고, 김극뉴 보다 17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묘를 그 아래에 썼으며, 부인 아래에 김극뉴의 묘를 썼다. 김극뉴 묘비김극뉴가 세상을 떠난 38년 후인 1534년(중종 29)에 세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위치]

순창 읍내에서 전주 쪽으로 가다 인계면에서 우측으로 적성면을 향한다. 이후 가성리 순창 수목원을 지나면 마흘리 도로변 좌측으로 용마산이 보이는데, 용마산 아래 남쪽 방향 낮은 곳에 김극뉴의 묘소가 있다. 묘소 앞에 묘비가 세워져 있다. 주소지는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 산36번지이다.

[형태]

화강암의 방형 대석(臺石) 위에 비신(碑身)과 개석(蓋石)이 일체로 조각된 대리석 재질의 비이다. 조선 전기의 묘비 형태가 잘 나타나는 석조물로 본래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비의 크기는 높이 132㎝, 너비 70㎝, 두께 14㎝이다.

[금석문]

비의 전면에 ‘통정대부 사간원 대사간 김공 지묘(通政大夫司諫院大司諫金公之墓), 숙부인 박씨 지묘(淑夫人朴氏之墓)’라고 해서로 썼다. 뒷면에는 세로로 18행 32자씩 새겼는데, 비문은 정헌대부 이조 판서 겸 홍문관 대제학·예문관 대제학 김안로(金安老)가 지었고, 글씨는 손자 김개(金鎧)가 해서로 썼다.

[현황]

비를 세운 지 약 500년이 되고 비각이 없이 비바람에 노출되어 박락이 심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음기(陰記)를 새긴 부분은 개석의 처마 근처 일부를 제외하고 하단부로 내려올수록 판독이 어렵다. 광산 김씨(光山金氏) 종중에서 관리하며, 묘소 아래의 김극뉴를 모신 영사재(永思齋)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7일에 제사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

김극뉴 묘비는 조선 전기의 묘비 양식을 잘 보여 주는 석조물로 조각 수법이 매우 우수하다. 또한 우리나라 예학의 대가이며 기호학파의 맥을 계승한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고조할아버지 묘비라는 측면에서 세인의 관심이 집중된 금석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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