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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717
한자 祭祀
이칭/별칭 조상 제사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집필자 황금희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음식을 마련하여 조상을 추모하는 의식.

[개설]

제사는 정성들여 마련한 음식을 진설한 후 조상에게 절을 올리고 축문을 읽으며 돌아가신 이를 추모하는 의식이다. 순창 지역의 제사는 집안 제사로 모시는 기제사(忌祭祀)와 설과 추석, 정월 대보름 등의 명절에 모시는 차사(茶祀)[차례(茶禮)], 그리고 산에서 모시는 묘제(墓祭)[시제(時祭)·시향(時享)] 등이 있다.

[연원 및 변천]

예로부터 가정에서 봉행해 온 제사에는 사당(祠堂) 제의, 사시제(四時祭), 시조제(始祖祭), 선조제(先祖祭), 이제(禰祭), 묘제, 기제(忌祭) 등이 있다. 그러나 현재 널리 행하는 조상 제사는 기일 제사, 명절 차례, 그리고 묘제이다. 과거에는 사당이 있는 집이 있어서 사당에 신위를 모셔 놓고 제사를 모셨지만, 지금은 사당이 있는 집이 없어서 방에서 지방을 써놓고 모시거나 사진을 놓는다. 예전에는 5대 봉사를 했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당대 조부모와 부모 제사만 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집안의 제사가 많을 경우 날을 잡아 합동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제사를 지내는 시간 역시 자시(子時)에 시작해서 닭이 울기 전에 끝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지금은 편의를 위해 저녁 무렵에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절차]

1. 차례

설날과 추석, 정월 대보름에는 명절 차례로 모시는데 이를 ‘차사’라고 한다. 예전에는 유두[유두차리], 백중, 중양절에도 차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명절로 쇠지 않는다. 명절날 아침에 상을 차려 놓고 차사를 지내는데, 집안 제사로 모시는 모든 조상들을 모시기 때문에 음식도 기제사 때와 동일하게 차린다. 다만 정월 대보름날은 나물과 찰밥만 올리고 탕과 국은 올리지 않는다. 차사 때의 제사 방식도 일반 제사와 같다. 과거에는 큰집에서 지냈기 때문에 작은집은 상을 차리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작은집에서도 차사 상을 차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2. 기제사

순창 지역에서는 부녀자들이 음식을 장만할 뿐만 아니라 제사에도 참여하여 절도 올린다. 제사를 모시는 시간은 과거에는 밤 10시가 넘으면 진설하기 시작해서 다음날 닭이 울어야 제사의 마지막인 ‘물에밥’을 하였으나 지금은 9시 정도에 제사를 지낸다. 제사 음식을 차릴 때 방위의 기준은 보는 사람을 기준으로 왼편이 동쪽이 되고 오른편이 서쪽이 된다. 본래 “지사[제사] 자랑은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사상을 차리고 지내는 방식이 집안마다 각각 다르다. 따라서 제사 상차림을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평균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순창 지역에서는 상의 제일 바깥 줄에는 과일을 올리는데 사과, 대추, 밤, 곶감, 배 등을 차린다. 그 안 줄에는 나물을 올리는데, 세 가지 혹은 다섯 가지를 차린다. 그 다음 줄에는 떡과 전, 식혜, 탕을 올리며, 탕은 홍합, 새우, 명태 등의 삼탕으로 한다. 떡은 설날에는 시루떡, 쑥떡, 인절미 등을 하며, 추석에는 송편을 추가해서 올린다. 나물과 떡 사이에 생선과 고기를 올려놓는다.

방안의 제사상 이외에 마루에도 간단한 상을 차리는데, 집안에서 총각으로 죽은 사람이 있을 때 올리는 상이다. 제사가 모두 끝나면 마루에 차려 놓은 상 앞에서 지방을 사르고, ‘물에밥’이라고 해서 바가지에 밥과 반찬을 골고루 담아 대문 밖에 짚을 깔고 부어 놓는다.

돌아가신 분의 생일은 삼년상을 마칠 때까지만 쇤다. 3년 동안에는 망자의 생일 아침에 음식을 장만해서 상을 차리고 제사 모시는 것과 같이 지낸다. 3년이 지나면 생일은 쇠지 않는다. 또 돌아가신 분의 환갑이 돌아오면 산에 가서 제를 지내는데, 묘 앞에서 음식을 차려 놓고 제를 모신 뒤에 돌아가신 분의 새 옷을 한 벌 가지고 가서 태워준다.

3. 묘제

6대조 이상의 조상은 산에 가서 모신다. 과거에는 10월에 모셨지만 지금은 봄에 많이 모신다. 봄에 모실 때는 3월 삼짇날이나 자손들이 모이기 좋은 식목일과 같은 공휴일에 많이 모신다. 시제 음식은 대개 문중 재산의 논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나온 소득의 일부로 문중 답을 지어먹는 사람이 장만한다. 과거에는 시제 음식을 아주 걸게 장만해서 시제를 모두 모시고 나면 참석한 자손들에게 음식을 조금씩 담은 ‘음식 꺼랭이’를 나눠 주었는데, 지금은 간단히 장만해서 그 자리에서 모두 먹고 치운다. 시제를 모실 때는 맨 윗대의 조상 묘에서부터 차례로 제사를 모시고 내려온다. 그러나 지금은 선산의 맨 아래에서 상 하나만 차려 놓고 합동으로 모신다. 만약 집안에 사당이 있으면 시제를 산에서 모시지 않고 사당에서 모신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금과면 매우리 매우 마을의 어떤 사람은 부모가 돌아가시고 그 아들이 제사를 모시다 연로하여 손자에게 제사를 보냈다고 한다. 제사를 모셔가는 절차는 바가지에 쌀을 담아 조상의 이름과 생일을 종이에 쓴 지방을 함께 넣고 묘에 가서 “앞으로 아무개 집에서 제사를 모시게 되었으니 다음부터는 그 집으로 오시기 바랍니다.”라고 고하고 난 다음 집으로 모신다. 거리가 멀 경우 차에 싣고 가면서 여기는 도랑이고 여기는 어디라고 입으로 알려드리며 모셔가야 귀신이 잘 따라간다고 한다. 그렇게 손자가 제사를 모셔간 이후에 바깥양반이 몹시 아파서 점을 보니, 부모님이 나와서 하는 말이 “제삿밥을 먹으러 가려는데 너무 멀어서 가기 힘드니 우리 죽은 날에 물 한 그릇과 밥 한 그릇만 떠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키는 대로 했더니 암이 걸려 금방 죽을 것이라던 사람이 3년간이나 잘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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