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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815
한자 龜岩寺浮屠殿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봉덕리 37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은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634년 - 구암사 창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707년 - 설파 상언 출생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767년 - 백파 긍선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791년 - 설파 상언 사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852년 - 백파 긍선 사망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870년 - 석전 한영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948년 - 석전 한영 사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7년 - 구암사 복구·재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9년 - 구암사 실화(失火)로 소실
복원 시기/일시 1972년 - 구암사 부도전 복구
현 소재지 구암사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길 131-144[봉덕리 374]지도보기
성격 부도군
관련 인물 설파 상언(雪坡尙彦)[1707~1791]|백파 긍선(白坡亘璇)[1767~1852]|석전 한영(石顚漢永)[1870~1948]
크기(높이) 1.2m[설파 상언백파 긍선 등의 옛 부도]|1.5m[석전 한영 등의 새로 조성된 부도]
소유자 구암사
관리자 구암사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구암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의 부도군.

[건립 경위]

구암사(龜岩寺) 입구에 있는 부도전에는 조선 후기부터 구암사에 주석하였던 고승들의 부도 7기가 전한다. 구암사는 634년(무왕 35)에 창건된 절로 수많은 승려들의 부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유실되었다. 더구나 6·25 전쟁빨치산 토벌 작전으로 법당 및 요사 등이 모두 소각되었다. 1957년에 사찰을 복구·재건하였으나, 1959년에 다시 실화(失火)로 경내 전체가 소실되었다. 이후 1972년에 법당과 요사를 복구할 때 현재의 부도전이 조성되었다.

[위치]

구암사 부도전(龜岩寺浮屠殿)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봉덕리 구암사 입구의 약 100m 전방 산길 왼쪽 위에 위치한다.

[형태]

선(禪)·화엄(華嚴)·율(律)에 뛰어났던 설파 상언(雪坡尙彦)[1707~1791], 백파 긍선(白坡亘璇)[1767~1852] 등의 옛 부도는 1.2m 정도의 탑형(塔形)이며, 석전 한영(石顚漢永)[1870~1948] 등의 새로 조성된 부도는 1.5m 정도의 종형(鐘形) 형태이다.

[현황]

구암사 부도전의 전각은 없으며, 경사면에 2단의 돌계단을 쌓고 그 위에 부도를 세웠다. 구암사 부도전 내에는 현재 설파 상언 부도 등 7기가 세워져 있으며, 김정희(金正喜)가 써서 선운사 부도전(禪雲寺浮屠殿)에 위치한 이른바 ‘대기대용비(大機大用碑)’로 일컬어지는 백파 긍선 비(白坡亘璇碑)가 복원되어 있다. 『(한국 전쟁 피해 조사 보고서)한국 전쟁과 불교 문화재』Ⅳ-전라북도 편에 의하면, 구암사 재산 목록에 입형(立形)의 석제 부도가 7기라 하였으므로, 나머지 3기의 부도도 어딘가에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설파 상언 등의 탑형 부도를 말하며, 석전 한영 등 새로 건립된 종형의 부도는 그 이후에 이루어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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