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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성 전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595
한자 淳昌城戰鬪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임숙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06년 2월 21일 - 최익현 호남 출병
발생|시작 시기/일시 1906년 6월 4일연표보기 - 순창성 전투 발발
전개 시기/일시 1906년 6월 6일 - 최익현 의병 부대 순창 구암사에 주둔
전개 시기/일시 1906년 6월 10일 - 광주 관찰사 이도재가 의병 해산 명령문 전달
전개 시기/일시 1906년 6월 11일 - 정시해 사망
전개 시기/일시 1906년 6월 13일 - 광주 고문관 츠나시마 고지로 침입
종결 시기/일시 1906년 6월 14일 - 전주 소대장 김희진이 최익현 압송
발생|시작 장소 순창성 - 전라북도 순창군
종결 장소 순창성 - 전라북도 순창군
성격 전투
관련 인물/단체 최익현

[정의]

1906년 최익현 의병 부대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성에서 벌인 전투.

[역사적 배경]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맺어지자 최익현(崔益鉉)은 분노했다. 이때 안병찬(安炳瓚)을 비롯하여 민종식(閔宗植) 등이 최익현을 의병장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최익현은 한구석에 홀로 있어 호응할 자가 적으면 위태롭다 하며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키려 했다. 결국 최익현은 1906년 2월 21일 호남으로 출병하여 군사 모집, 군량 마련 및 군사 훈련 등을 진행했다. 이때 민종식이 이끄는 홍주 의진이 충청남도 지역을 휩쓸고 옛 관찰부였던 홍주성을 점령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더는 뜻을 미룰 수 없다 생각한 최익현은 1906년 6월 4일 전라북도 태인 무성 서원(武城書院)에 배알(拜謁)하고 여러 문인들을 거느리고 강회를 한 다음 거의의 소를 올리고 출병했다.

[경과]

6월 5일 행군하여 정읍(井邑)에 도착, 내장사(內藏寺)에서 자고 6월 6일 순창으로 들어가 구암사(龜岩寺)에 주둔했다. 8일 순창읍에서 왜병 수십 명이 군청으로 들어왔다는 전령이 들려오자 6월 9일 순창으로 출발했다. 이때 최익현 부대가 순창읍 각씨숲[角氏藪]의 주막에 이르렀을 때 왜병 수십 명이 금산(錦山)으로 민병에게 쫓기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6월 10일 광주 관찰사 이도재(李道宰)가 사람을 시켜 의병 해산 명령문을 보냈지만 최익현은 상소에 대한 고종의 답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때 척후병의 보고에 따르면 적의 한 부대는 금산 숲 속에 숨어 있고 또 한 부대는 대동산(大同山)에 있다 하였는데 이 부대는 왜병이 아니라 전주와 남원의 진위대였다. 전주와 남원 진위대 병력이 포위하고 위협사격을 했다. 이때 왜병이 아닌 같은 나라 부대인 사람들과는 싸울 수 없다는 뜻을 밝히며 최익현은 의병 해산을 명령했으나 명령을 거부하고 남아 있는 자가 100여 명이 되었다고 한다.

[결과]

1906년 6월 11일 오후 6시쯤 포성이 연발하자 남아 있는 자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 22명 정도가 최익현을 호위하며 떠나지 않자 최익현임병찬(林秉瓚)으로 하여금 그 이름을 써서 벽 위에 붙이도록 하였다. 오후 8시쯤 순창 출신 정시해(鄭時海)가 33살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 후 밤이 깊어지자 광주 이도순(李道淳), 순창 임상순(林相淳)이 밖에서 죽을 쑤고 술을 데워 가지고 오니, 남아 있는 사람은 최익현, 임병찬, 고석진(高石鎭), 김기술(金箕述), 문달환(文達煥), 임현주(林顯周), 유종규(柳鍾奎), 조우식(趙愚植), 조영선(趙泳善), 나기덕(羅基德), 이용선(李容先), 유해용(柳海瑢), 최제학(崔濟學) 뿐이었다.

6월 12일 날이 밝자 최익현은 나기덕으로 하여금 ‘대한 의사 정시해지구(大韓義士鄭時海之柩)’라고 명정을 쓰도록 하고 김기술, 임현주로 하여금 시체를 거두어 들판에 초빈하도록 하였다. 다시 밤이 되자 왜구들이 쳐들어와 총소리가 요란한데 최익현이 먼저 『맹자(孟子)』의 호연(浩然)과 웅어(熊魚) 두 장을 외우니 다른 사람들도 차례로 한편씩 외웠다고 한다. 다음날인 13일 밤 광주 고문관 츠나시마 고지로[綱島幸次郞]가 쳐들어왔으며 14일 10시경에는 전주 소대장 김희진(金熙鎭)이 쳐들어와 최익현 등을 압송해 갔다.

[의의와 평가]

한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자 했던 최익현 부대의 마지막 정신이 녹아 있는 전투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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