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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637
한자 石洑里木-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석보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형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석보리 목장승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석보리 지도보기
원소재지 석보리 목장승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석보리
성격 액막이용
크기(높이,둘레) 160㎝[높이]|25㎝[지름]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석보리에 있는 장승.

[개설]

석보리 목장승은 순창군 내에 있는 유일한 목장승이다. 순창군 추령에 조성된 장승촌의 목장승과는 개념이 전혀 다르다. 석보리 목장승이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입지와 관련하여 액막이용으로 세운 역사가 깊은 정통 목장승이라면, 추령 장승촌의 목장승은 한 개인의 창작 조형품이란 점에서 전혀 다르다. 장승은 인형상이고 무서운 형상을 한 수호 신상이다. 장승은 신상에 명문이 써 있고, 마을 입구에서 서로 마주보는 형상이며, 험악한 얼굴상을 특징으로 한다.

[위치]

일반적으로 장승은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 입구 양쪽에 서서 서로 마주 보는 형상인데, 석보리 목장승은 마을 입구 길 양쪽에 위치하는 게 아니라 마을의 좌우편에 위치한다. 그 이유는 마을 앞으로 추령천이 흐르기 때문이다. 석보리 장승은 남쪽, 서쪽, 북쪽 3곳에 각 1기씩 세워져 있다. 강둑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면 입구 왼쪽에 1기가 세워져 있고, 마을 오른쪽 강변에 1기, 마을 뒤쪽에 1기가 세워져 있다. 석보리 목장승은 짐대와 한 세트로 세워져 있는 등 독특한 방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장승의 위치는 주민들이 취락을 형성하고 마을의 안전장치를 하면서 자연 환경에 어떠한 식으로 적응하였는지를 보여 준다.

[형태]

석보리 목장승은 소나무를 베어서 사모 장식을 붙이고, 먹물로 사모 장식과 얼굴상을 그리고 몸체에는 명문을 써 넣었다. 장승의 재질은 소나무이며, 크기는 일정한 기준은 없으나 3기 모두 높이 160㎝, 지름 25㎝ 정도이다. 명문은 ‘동방 축귀 대장군’, ‘서방 축귀 대장군’, ‘북방 축귀 대장군’으로 써 넣었다. 이와 같은 명문은 석보 마을 장승이 액막이 장승이며, 천연두와 홍역, 이질 등 전염병[손님마마]이 횡행하던 시기부터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마을에 천연두가 들어오는 것을 방지할 목적에서 축귀용 대장군상을 세워 놓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석보 마을 목장승은 두창 장승이라 할 수 있다.

[의례]

석보리에서는 매년 2월 초하룻날 장승제를 거행한다. 해뜨기 전 마을 청년들이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장승으로 사용할 소나무 3그루를 벤다. 해뜨기 전에 간단한 방식으로 소나무에 인형 장식과 명문을 써 넣은 뒤 농악대의 인도에 따라 서쪽, 남쪽, 북쪽 세 곳에 각각 장승을 세우면 농악대가 축원 굿을 쳐주는 것으로 장승제를 마친다.

[현황]

마을 주민이 공동으로 목장승을 세우는 전통을 전승하는 곳은 매우 드물다. 또한 마을 장승을 마을 3곳에 세우는 것도 희귀하다. 그런데 석보리 주민들은 격년제로 목장승을 세우는 일을 멈추지 않고 지속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마을을 정점으로 남쪽, 서쪽, 북쪽 3곳에 장승을 세우는 관행은 조선 시대 전염병이 횡행하던 시기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평온을 유지하기 위한 액막이용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석보리 목장승은 조선 후기 장승을 세우기 시작한 당시의 마을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민속자료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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