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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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赫根 |
영어공식명칭 | Im Hyeokgeu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집필자 | 이상범 |
출생 시기/일시 | 1898년 1월 3일 - 임혁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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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4년 1월 1일 - 임혁근 사회주의 비밀결사 갑자연구회 결성 |
활동 시기/일시 | 1925년 12월 17일 - 임혁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개월형 언도받음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27년 - 익산신간회 사건 발생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 임혁근 신간회 익산지부 결성에 참여하여 체포됨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28년 4월 28일 - 제4회 전북기자대회 개최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12월 - 임혁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34년 6월 30일 - 임혁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임혁근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
출생지 | 익산면 마동리 - 전라북도 익산시 마동 |
거주|이주지 |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
활동지 | 익산 - 전라북도 익산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중외일보』 이리지국장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임혁근(林赫根)[1898~1934]은 1898년 1월 3일 익산군 익산면 마동리[현 익산시 마동]에서 태어났다. 1924년 1월 1일 익산읍에서 조용관(趙容寬)·임종식(林宗植)·김영휘(金永輝) 등 9명과 함께 사회주의 비밀결사 갑자연구회(甲子硏究會)를 조직한 뒤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25년 12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군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7년 신간회(新幹會) 익산지회의 창립총회 때에 “신간회운동은 독립운동의 수확기이다.”라는 내용의 격문을 제작하여 배포한 혐의로 간부 배헌(裵憲)·임영택(林榮澤) 등과 함께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하여 1928년 2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1928년 4월 28일 임실청년회관에서 열린 제4회 전북기자단대회의 강령 및 토의 내용이 빌미가 되어 당시 『중외일보』 이리지국장이었던 임혁근은 『동아일보』 이리지국장 배헌, 『동아일보』 전주지국 기자 김지수(金智洙), 『조선일보』 전주지국 기자 하준기(河駿基)와 함께 5월 7일 일경에 체포되었으나 1개월 후 풀려났다. 그해 7월에 다시 체포된 임혁근은 1930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34년 6월 3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대한민국 정부는 임혁근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