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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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인로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경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경주 김씨 입향조는 김균(金稛)의 7세손 김인로(金仁老)이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54만 2018가구, 173만 6798명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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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손을 시조로 하고 설침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경주 설씨(慶州偰氏)는 설손(偰遜)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경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경주 설씨는 영광 군수를 지낸 설침(偰琛)이 관직에서 물러나 외가가 있는 순창으로 낙향하여 금과면 남계리 호치 마을에 입향한 이후 그 자손이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해 오고 있다. 금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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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백호를 시조로 하고 정명백, 정두언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경주 정씨(慶州鄭氏)는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하고 정진후(鄭珍厚)를 중시조로 삼는다. 경주를 비롯하여 연일(延日), 동래(東萊), 온양(溫陽), 초계(草溪), 하동(河東), 진양(晉陽), 진주(晉州) 등 여러 본관으로 나누어져 계보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경주 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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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덕봉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경주 최씨(慶州崔氏)는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경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경주 최씨 입향조는 최치원의 후예인 덕곡(德谷) 최덕봉(崔德奉)이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30만 4722가구, 97만 6820명이 거주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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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군 지역의 기생들을 포함한 조선 전역의 기생 조합. 조선 시대의 교방(敎坊)과 관기(官妓) 제도는 1907년부터 점진적으로 해체되어 1908년 9월 장례원에서 관리하던 기생들을 경시청(警視廳)에서 관리하고 기생들에게 자유 영업을 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폐지되었다. 이후 1916년 3월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일본식 유곽 제도를 공포하면서, 기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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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로(敬魯), 호는 경암(敬庵). 조선 선조 때 형조 참의 예문관을 지낸 만취(晩翠) 김위(金偉)[1532~1595]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황씨(黃氏)이다. 『경암집(敬庵集)』에 의하면 김교준(金敎俊)[1883~1944]은 1883년(고종 20) 출생하여 지리산 바래봉 아래에서 살았는데, 성격이 강경하면서도 순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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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의병. 본관 경주(慶州). 자는 태선(胎仙). 제숙공(齊肅公) 김곤(金稇)의 후손으로, 판관 김백령(金百齡)의 5세손이다. 김봉학(金奉鶴)[1515~1592]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8세의 고령으로 김극복(金克福)·이팽령(李彭齡) 등과 함께 종을 거느리고 금산(錦山)으로 달려가서 초토사 고경명(高敬命)[1533~1592]의 막하로 들어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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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군수로서 삼인대에서 중종의 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한 문관이자 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충(元冲), 호는 충암(沖庵)·고봉(孤峯). 증조할아버지는 김호(金滸)로 평택 현감(平澤縣監)을 지냈으며 도승지(都承旨)에 추증되었다. 할아버지는 김처용(金處庸)으로,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아버지는 김효정(金孝貞)이며 호조 정랑(戶曹正郞)을 지냈고, 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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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호진을 시조로 하고 설자승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순창 설씨(淳昌薛氏)는 설호진(薛虎珍)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순창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설씨는 순창의 토착 성씨로 1126년(인종 4) 설자승(薛子升)이 처음 구림면 율북리에 들어와 정착한 이후 그 후손이 금과면 동전리와 고례리, 내동리 내동 마을 및 쌍치면 양신리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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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 교회. 1952년 4월 5일 최의상(崔義祥) 집사의 집에서 예배를 보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가을에 순창군 남계리에 있는 옛 정미소를 매입하여 예배를 보았으며, 1955년에 지금의 예배당 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다. 신도 수는 유년 주일 학교 아동 100명, 중등학교 학생 60명, 일반 150명 정도였다.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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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순창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길부(吉夫), 호는 모정(慕亭). 고려 시대 대제학을 지낸 양수생(楊首生)의 후손으로 양수생의 처 이씨는 남편이 죽자 남편의 홍패를 안고 개성에서 남원으로 낙향, 다시 순창으로 이주해 동계면 구미리 일대에 남원 양씨가 현재까지도 세거하게 하였다. 양희적의 아버지는 돈암공(墩庵公) 양사선(楊士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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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유둣날에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던 차례. 음력 6월 15일인 유두(流頭)에 지내는 차례에는 유두 제사와 유두 천신이 있다. 유두 제사는 민간에서 농신이라고 믿는 용에게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민속 신앙의 한 형태이다. 유두 천신은 제철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에게 바치고 유교식 제의 절차에 따라 지내는 유교식 명절 제사이다. 순창 지역에서는 유두에 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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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수장리에 있는 효자 정국영의 비. 정국영(鄭國永)의 호는 영암, 자는 군백,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정국영은 부모 봉양에 극진하였으며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고, 평소 근검하며 빈곤한 이웃을 도와주는 데 애써서 주변에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에 1921년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추증되었다. 1960년 3월 한식에 밀양 박씨(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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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보(順甫), 호는 화암(花巖). 증조할아버지는 효자 정시태(鄭時泰)이고 아버지는 정채룡(鄭采龍)이다. 정상신(鄭商臣)[1775~?]은 1775년(영조 51)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가정의 교훈을 이어받아 효성이 지극하였다. 상을 당하여서는 예를 다하여 마쳤고, 시묘살이를 지성으로 하자 하늘이 감동하여 큰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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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미화(美化), 호는 방은(芳隱). 계림군(鷄林君) 정지년(鄭知年)[1395~1462]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언교(鄭彦僑)이다. 손자는 효자 정채룡(鄭采龍)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정시태(鄭時泰)는 품성이 순효하여 부모를 섬김에 있어 혼정신성(昏定晨省)[저녁에는 잠자리를 살피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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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애죽당(愛竹堂). 할아버지는 정시태(鄭時泰), 아버지는 정세만(鄭世萬)이다. 아들은 효자 정상신(鄭商臣)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정채룡(鄭采龍)은 어려서부터 조상들의 행실을 본받아 잘 지켜서 홀어머니를 섬기는 데 효를 다 하였다. 어머니 앞에서 어린애처럼 어리광을 부려서 마음을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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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에 부조묘(不祧廟)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가구(可久). 증조할아버지는 정인검(鄭仁儉), 할아버지는 정염(鄭濂)이고, 아버지는 증좌찬성 정지년(鄭知年)이다. 정효상(鄭孝常)[1432~1481]은 1432년(세종 12)에 출생하여 1451년(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54년(단종 2) 별시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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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서 참봉 양운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종호의 바위 위에 술을 부어 놓고 마신 거사」는 순창 일대의 거부(巨富)이자 풍류객이었던 참봉(參奉) 양운거(楊雲擧)가 수십 명이 앉아 놀 만한 너른 반석을 파서 술 항아리를 만들고 거기에 술을 부어 놓고 시객(詩客)들과 풍류를 즐겼다는 인물담이다. 또한 바위를 종호(鐘湖)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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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과 태인을 기반으로 활동한 유학자이자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庵), 아명(兒名)은 최기남(崔奇男). 증조할아버지는 최광조(崔光肇), 할아버지는 최극경(崔克敬), 아버지는 최대(崔岱)이다. 어머니는 이계진(李啓晉)의 딸이다. 최익현(崔益鉉)[1833~1906]은 1833년(순조 33) 경기도 포천에서 출생하였다. 9세 때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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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 향교에 배향된 통일 신라 시대 학자이자 문장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고운(孤雲)·해운(海雲). 아버지는 원성왕 때 숭복사(崇福寺) 창건에 참여하였다는 최견일(崔肩逸)이다. 최치원(崔致遠)은 857년(헌안왕 1) 출생하여 868년(경문왕 8) 12세의 어린 나이로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에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87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