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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605
한자 錦月里大角堂山祭
이칭/별칭 짐대제,대각 당산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금월리
집필자 한미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70년~1973년 - 금월리 대각 당산제 중단
재개 시기/일시 1974년 - 금월리 대각 당산제 재개
성격 민간 신앙|마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2월 1일
신당/신체 짐대[솟대]|소나무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금월리 대각 마을에서 마을의 액운을 막고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금월리 대각 당산제는 음력 2월 1일 화재 예방을 목적으로 짐대를 세우고, 마을로 들어오는 액운을 막을 뿐만 아니라, 무사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짐대제’, ‘대각 당산제’ 등이라고도 한다. 짐대[솟대]란 민속 신앙의 대상으로 세운 긴 장대[長竿]를 일컫는다.

금월리 대각 마을은 400여 년 전에 김씨, 전씨, 장씨, 천씨 등의 4성이 처음 터를 잡아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그 후 여러 성씨들이 모여 살게 되었으며, 현재는 13가구 30여 명이 살고 있다. 마을 뒤편에는 장군의 형상을 하고 있는 대각산이 있다. 광주 무등산의 손자에 해당하는 대각산의 북쪽 자락에서 복흥 쪽으로 뻗은 산의 모습은 장군이 쓰던 투구를 벗어 놓은 형상이다. 그 안쪽으로 대각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이 장군이 사용하던 칼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장군 모양을 하고 있는 대각산에는 장군 명당이 있다고 전해 온다. 장군 명당에 묘를 쓰면 자손 가운데 뛰어난 무관이 나온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장군 명당을 찾아 대각산을 넘나든 적이 있었다고 한다.

[연원 및 변천]

대각 마을에는 예로부터 마을 건너 산기슭에서 비춰지는 화시봉 때문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였다고 한다. 때문에 화시봉의 화기를 방어하기 위하여 물오리를 상징하는 나무오리 조각을 높이 세우는 화재막이 짐대제를 거행해 오고 있다.

화재막이 짐대를 세운 동기에 대하여, 『순창향지』에는 “대각 마을의 서남쪽 능선으로 거대한 귀목나무가 보비용으로 많이 서 있었고, 마을 앞에는 수정자나무와 암정자나무가 서 있어 매년 보름날이면 당산제를 지냈다. 그런데 지금부터 71년 전인 1928년 무진에 일본인들이 군용 선박을 제작한다는 미명 아래 당산나무를 베어 갔다. 그러자 그해 2월 1일 현재 이만석씨 집 뒤에 있는 바위에서 새빨간 물동이와 같은 불덩어리가 동서남북으로 날아다니면서 이 집 저 집에 불이 붙어 온 마을이 일시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 이때에 암정자나무가 서 있는 쪽으로는 불이 건너오지를 않았고 수정자나무에 불이 붙어 며칠 동안 타면서 암정자나무는 무사하고 이쪽 마을은 전혀 옮겨 오지 않았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그 연원을 알 수 없지만 정월 보름이 아닌 이월 초하루에 짐대제를 모시게 되었는데, 현재 그 내력에 대해 아는 이는 없다.

오랜 역사를 지닌 대각 마을 짐대제는 새마을 운동이 실시되던 1970년부터 3년 동안에는 짐대를 세우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짐대를 세우지 않자 마을에 자꾸만 화재가 발생하여 많은 피해가 있게 되었고, 그래서 중단했던 짐대를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중단 없이 짐대제를 지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짐대제의 신체는 소나무다. 길이는 대략 3m 정도 되며, 위에 오리를 깎아 올린다. 짐대의 개수는 매년 다르지만 평균 1개에서 3개 정도 만들어 세운다.

[절차]

대각 마을에서는 음력 이월 초하루에 짐대제를 거행한다. 이날 짐대를 세우기 위해 하루 전날 밤에 마을의 젊은 청년들이 짐대로 사용할 소나무를 구해 온다. 짐대를 구해 오면 마을 사람들은 고생하였다고 젊은 청년들에게 술과 안주를 마련하여 대접하고, 준비하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짐대 위에 올라갈 오리를 만든다.

1950~1960년대에는 짐대로 사용할 소나무를 구하기 위하여 백양사까지 가서 구해온 적도 있다고 한다. 짐대로 사용할 소나무는 지름 10~15㎝ 가량 되며, 길이는 3m 가량 되는 곧은 소나무를 사용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꼭 곧은 소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소나무의 형태를 살려 굽은 소나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과거에는 짐대 위에 오리가 한 마리 있었는데, 지금은 2~3마리의 오리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월 초하루 아침 9시 무렵이 되면 전날 만들어 놓은 짐대를 세우고, 그 앞에서 간단히 제물을 진설한 후 제를 모신다. 제물은 일반 기제사와 동일하지만 돼지머리가 올라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각 마을의 짐대제는 현재 매우 간소화되어 있어서, 제관 선정도 따로 하지 않고 그날 사정에 따라 아무나 나서서 하며, 제물 준비도 아침 일찍 마을 회관에서 부녀자들이 장만한 것으로 간단히 제를 모신다. 따라서 제물을 위한 제비도 따로 추렴하지 않고 마을 기금을 사용한다. 축문도 역시 과거에는 읽었지만, 지금은 읽지 않고 소지만 올린다.

[부대 행사]

금월리 대각 당산제를 지내는 이월 초하룻날은 온 마을 사람들이 짐대를 세우고 나면 풍물굿을 치고 흥겨운 마을 잔치를 벌인다. 그리고 마을 잔치가 끝나면 마을 총회를 개최하여 일 년 동안 이루어진 마을 일을 결산하고 새로운 임원을 선출하기도 한다.

[현황]

금월리 대각 당산제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믿음이 매우 강해서 형식은 간소화되기는 하였지만, 현재도 짐대제는 반드시 모셔야 하는 마을 제사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마을 주민에 의하면 앞으로도 이변이 없는 한 제사는 계속 모셔질 것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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