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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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목동리에서 풍산면 두승리를 연결하는 군내 도로. 군도 7호선은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과 경계인 금과면목동리[일목]에서 시작하여 방성리[방성, 지방도 729호선과 교차]~남계리[호치]~매우리[금과면사무소, 지방도 730호선과 교차]~ 내동리[연화, 내동]~ 발산리[발산, 산수동, 지방도 729호선과 교차]~풍산면 죽곡리[하죽], 순창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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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남서부에 있는 행정 구역. 금동면(金洞面)의 ‘금’ 자와 목과면(木果面)의 ‘과’ 자를 합하여 금과면(金果面)이라 하였다. 순창군청 소재지인 순창읍과 9㎞ 떨어져 있다. 순창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금과면은 1314년(충숙왕 1) 금동방(金洞坊)과 목과방(木果坊)으로 불렸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1760년(영조 36) 금동방 11개 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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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계리(南溪里)는 남계 마을과 호치(虎峙) 마을을 합하여 부르는 법정리의 명칭이다. 400여 년 전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처음 터를 잡고 살다가 집안이 몰락하여 이사하고, 그 후 유신곤(柳晨坤)이란 사람이 인근 호치 마을에서 거주하다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남계 다리 앞 서당재 밑에 동산촌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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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윤희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남양 홍씨(南陽洪氏)는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남양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남양 홍씨 입향조는 소위 장군(昭威將軍) 홍윤희(洪允熙)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남양 홍씨[당홍계]는 전국적으로 1만 7638가구, 37만 9708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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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서 군벌 논의 김을 매면서 부르는 노동요. 「담담서름 타령」은 금과면 매우리 지역 농민들이 한벌 매기 후에 다시 풀이 자라서 군벌 맬 때 농사일의 노고를 조금이나마 덜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받는 소리의 후렴구 끝의 가사를 따서 이를 「담담설움 타령」이라고도 한다. 순창군에서 군벌 매기를 할 때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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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전리(銅田里)는 동전리와 만촌리(蔓村里), 대장리(大場里)를 합해서 법정리로 부르는 명칭이다. 동전 마을은 1567년(명종 22)경 설씨, 박씨, 김씨, 가씨 등 4성이 정착하여 시작된 마을이다. 금과면 명산인 아미산 정기를 타고 굽이굽이 내려와 자리를 잡은 것이 마치 와룡(瓦龍)과 같고 그 기슭이 꼭 구리 밭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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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매우리(梅宇里)는 매우(梅宇) 마을, 밭매우[밭梅宇] 마을, 신매우(新梅宇) 마을을 통합하여 부르는 법정리의 명칭이다. 매우 마을은 한때 모정리(茅亭里)라 불렀으며, 울타리처럼 뻗은 나뭇가지나 소쿠리처럼 오목한 곳에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 뒷산의 형상이 집안에 매화꽃이 만발한 모양이라 하여 ‘매화 매(梅)’에 ‘집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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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 밭매우 마을에 있는 돌탑. 금과면 매우리(梅宇里)는 1914년 행정 지명이 모정리(茅亭里)로 바뀌었다가 2007년 다시 매우리로 바뀌었다. 신매우 마을, 매우 마을, 밭매우 마을 등 3개의 자연 마을이 있다. 밭매우 마을은 지리적으로 매우리 바깥에 위치하여 밭매우라고 불렀다. 원래 ‘매우’라는 지명은 마을 뒷산 지형이 집 안에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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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서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노동요. 「모심기 소리」는 모를 못자리에서 논으로 옮기고 손으로 모를 심어 가면서 흥을 돋우고 힘든 것을 잊기 위하여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이를 후렴구를 따라서 「상사 소리」라고도 한다. 금과면 매우리에서 모를 심을 때는 북으로 못방구를 치는데, 선창자가 앞소리를 메기고 나머지 일꾼들이 일정한 후렴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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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서 모판의 모를 뽑으면서 부르는 노동요. 「모찌는 소리」는 모내기에 앞서 모판에서 모를 뽑는 모찌기를 하면서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볍씨를 모판에 뿌려 적당히 크면 논으로 옮겨서 심는다. 모판에 빽빽하게 심어 키운 모는 논에 옮겨심기 좋게 적당한 크기로 찢어서 묶는데, 이 과정에서 부르는 민요가 「모찌는 소리」이다.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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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서 처음 논의 김을 매면서 부르는 노동요. 「문열가」는 처음으로 김매기를 할 때 농사일의 노고를 덜고 능률을 올리기 위하여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문열가」는 논의 문을 연다, 즉 첫 관문을 연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문열가」는 「김매기 소리」 중 첫 번째로 불리는 노래이다. 호미로 논을 매기 때문에 이를 「호무질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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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서 물을 퍼 올리면서 부르던 노동요. 「물푸기 소리」는 용두레를 사용하여 논에 물을 퍼 넣으면서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이를 「물품기 소리」라고도 한다. 하늘만 보고 농사짓던 시절에 비가 오지 않으면 마른논에 물을 퍼 올려야 한다. 특히 모를 논에 심는 모내기를 하기 위해서는 논에 물을 대야 한다. 지금은 기계로 물을 대지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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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서 논의 김을 매면서 부르는 노동요. 「방아 타령」은 금과면 매우리 지역 농민들이 논에서 김[풀]을 맬 때 농사일의 노고를 덜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이를 「군벌매기 소리」라고도 한다. 한벌을 매고 10일쯤 지나 ‘군벌’을 매는데, 군벌은 김매기로서는 세 번째 작업이며, 맨손으로는 두 번째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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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기록에 따르면 방축리(防築里)는 동쪽으로 배를 매어 두는 배 맨 산의 형상이 있고, 마을에는 물이 가득 고인 방죽이 있어 제방을 막아 취락을 이루었다 하여 방죽골이라 불렸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마을이 삽살개가 쪼그리고 앉은 쥐를 쫓으려고 하는데 그 옆에 호랑이가 엎드려 있어 쫓아가지 못하는 형상이라 ‘방축(尨逐)’이라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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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서 마지막 김매기를 할 때 부르는 노동요. 「사호 소리」는 마지막 김을 맬 때 농사일의 노고를 덜고 능률을 올리기 위하여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이를 「만드레 소리」, 「에이사호 소리」, 「싸호 소리」, 「호요 타령」 등이라고도 한다. 군벌 매기가 끝난 후 10일 쯤 후에 마지막 김매기인 ‘만드레[만두레]’를 한다. 김매기 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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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삼외당(三畏堂)은 선조 대 봉정대부(奉正大夫)로 사헌부 감찰, 문경 현감 등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김천일(金千鎰) 막하에 들어가 여러 차례 공을 세운 순창 출신 홍함(洪涵)[1549~1593]의 정자이다. 홍함이 관직에서 물러나 임진왜란에 출전하기 전에 정자를 지어 자신의 호를 붙여 삼외당이라 이름 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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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서 논의 김을 매면서 부르는 노동요. 「연꽃 타령」은 한벌 김매기를 할 때 농사일의 노고를 덜고 능률을 올리기 위하여 부르는 농업 노동요이다. 「문열가」 다음으로 부르는 「연꽃 타령」은 후렴구 처음 시작을 ‘연꽃일레’로 시작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를 「김매기 소리」, 「한벌 매기 소리」 등이라고도 한다. 2004년 유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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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서 마지막 논매기를 마치고 농사 장원 일꾼을 선발하여 주인집으로 향할 때에 부르는 유희요. 「장원질 소리」는 마을에서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 일꾼을 농사 장원으로 뽑아 당사실로 치장한 소의 잔등에 태운 후 삿갓을 거꾸로 씌우고, 나머지 일꾼들이 이를 에워싸고 풍장을 치며 동네 고샅[마을의 좁은 길목]을 돌며 주인집으로 행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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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에서 순창군으로 연결되어 순창군 유등면, 순창읍, 풍산면, 금과면을 통과하여 국도 24호선과 교차하는 지방 도로. 지방도 730호선은 남원시 대강면에서 순창군 유등면[유촌리~오교리~외이리~건곡리~창신리]~순창읍[남계리에서 국도 27호선과 교차~가남리~신남리]~풍산면[용내리~반월리~유정리]~금과면[수양리~동전리~매우리~방축리]에서 국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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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 있던 조선 전기 정자. 순창군 금과면 마암촌 출신인 설홍윤(薛弘允)[1515~1583]은 조선 전기의 유학자로 자는 공신(公信), 호는 청취정(淸翠亭)이다. 1537년(중종 32)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고향에서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당시 율곡(栗谷) 이이(李珥)[1537~1584]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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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은 맑고[淳] 창성[昌]한 땅이다. 순창은 예로부터 옥천(玉川)·순화(淳化) 등으로 불릴 만큼 물이 맑고 순박하며, 절경이 많고 인심이 후덕하여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또한 순창은 전라북도 동남부 산간 분지에 속하지만, 예로부터 풍부한 농경 생산 덕택에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자연환경이 수려하여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알려졌다. ‘생거순남(生居淳南) 사거임실(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