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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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년 편찬된 『옥천 군지(玉川郡誌)』 경신판(庚辰版) 열부 이씨전(烈婦李氏傳)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직제학(直提學) 양수생(楊首生)의 부인으로 이씨가 임신 중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그의 부모는 젊어서 과부(寡婦)가 되는 것을 불쌍히 여겨 이씨의 뜻과 상관없이 재가(再嫁)를 시키려 하였으나, 이씨는 죽음으로 항거하고 아들을 낳으매 겨우 몇 년을 지나 또 강제로 시집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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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정려. 고려 직제학 양수생 처 열부 이씨려(高麗直提學楊首生妻烈婦李氏閭)는 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판서 권성(權晟)이 지은 「열부 숙인 이씨 묘비 음기(烈婦淑人李氏墓碑陰記)」와 운계(雲溪) 황신구(黃信龜)가 지은 「열부 숙인 이씨 정려비 음기(烈婦淑人李氏旌閭碑陰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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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미리의 주산 무량산이 일명 구악(龜岳)이라 하여 거북 형상인데, 마을 근처에서 거북이 진흙 속으로 빠져드는 형상을 하고 있다. 따라서 ‘거북 구(龜)’ 자와 ‘꼬리 미(尾)’ 자를 합하여 구미리(龜尾里)라 부르게 되었다. 남원 양씨(南原楊氏)가 마을의 중앙에 살아서 가운데 마을이라는 뜻으로 중동(中洞)으로 표기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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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북두칠성 문양이 조각된 바위. 우리나라에서는 선사 시대는 물론 고대 국가 시대부터 북두칠성을 숭배하는 고유의 신앙이 있었다. 하늘의 북두칠성은 방위를 가리키고 1년 4계절이 변화하는 시간을 재는 기준이었다. 북두칠성을 칠성신(七星神)이라 불렀는데, 칠성신이 길흉화복과 생명,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도교가 중국에서 전래하면서 불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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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개항기에 중건된 누정. 구암정(龜巖亭)이 있는 만수탄(萬壽灘) 천변은 순창 출신의 덕망 높은 선비인 양배(楊培)가 노닐던 곳이다. 양배의 자는 이후(而厚), 호는 구암(龜岩)으로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와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로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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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암면 소속으로 국화(菊花) 마을·황학(黃鶴) 마을·창평(昌平) 마을·금상(金箱) 마을 등 4개 마을을 묶고 금상의 ‘금’ 자와 창평의 ‘창’ 자를 합쳐 금창리(金昌里)로 개편하였다. 자연 마을인 황계 마을은 누런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황계포란(黃鷄抱卵) 형상이어서 황계촌(黃鷄村)으로도 부른다. 황계촌 뒤 골짜기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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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문을 시조로 하고 양사보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남원 양씨(南原楊氏)는 시조 지영월군사(知寧越郡事) 양경문(楊敬文)부터 8세손까지 황해북도 개성 돌거개에서 거주하였다. 순창 지역 입향조 양사보(楊思輔)가 사마시에 합격하고 함평 현감을 지내는 등 가문을 일으킨 이래 문과 급제 8명, 무과 급제 10명, 생원과 진사 30명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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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구미 마을 남원 양씨(南原楊氏) 종중에 전해 오는 고문서. 남원 양씨 종중 문서 일괄(南原楊氏宗中文書一括)은 1981년 7월 15일 보물 제725호로 지정되었으며, 홍패(紅牌) 2매와 교지(敎旨) 5매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 국립 전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남원 양씨 종중 문서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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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구미 마을 남원 양씨(南原楊氏) 종중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남원 양씨 종중 문서는 교지(敎旨)·교첩(敎牒) 10건, 소지(所志) 87건, 백패(白牌) 1건, 책자(冊子) 1건 등 모두 4종 99건이다. 교지와 교첩은 양시정(楊時鼎)이 1624년(인조 2) 문과에 급제한 뒤 관직 생활을 하면서 받은 것이 대부분이고, 이 외 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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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방축리에서 남은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남은 바위 전설」은 금성산성을 쌓는 과정과 관련하여 전승되는 두 가지의 축성 설화이다. 하나는 산성을 쌓으러 가는 도중에 멈춰 선 바위가 남원 양씨 무덤의 고인돌이 되었다는 무덤 유래담이고, 도인이 몰고 온 바위가 쓸모가 없어 남겨졌다고 하여 '남은 바위'로 불리었다는 암석 유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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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서 양수생의 처 이씨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내기로 삶터를 지켜낸 여인」은 고려 후기 삼부인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양수생(楊首生)의 처 이씨가 비홍산(飛鴻山) 아래의 길지(吉地)를 삶터로 정해 살던 중 어떤 중에게 삶터를 뺏길 위기에서 지혜와 내기로 이를 지키고, 남원 양씨의 입향조를 세워 집안을 일으키는 과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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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에서 흑임자, 송화, 오미자, 노란콩가루 등을 꿀과 함께 버무려서 다식판으로 찍어서 만든 음식. 순창에서 다식(茶食)은 흰깨, 검은깨, 콩, 찹쌀, 밤, 녹두 녹말, 송화 등의 곡분, 견과류, 종실류, 꽃가루, 약재 가루 등 가루로 만든 재료를 꿀로 반죽하여 나무틀인 다식판에 박아 낸 과자로서, 명절[설날], 제사상, 폐백, 잔칫상 등에 차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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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룡리(道龍里)는 인계면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며 면사무소 및 보건 지소가 소재하고 있다. 안덕로[국도 27호선]와 구인로[국도 21호선]가 인계면사무소 부근에서 교차한다. 용암 마을, 정산 마을, 팔학 마을, 새뜸 마을, 도사 마을 등이 동서로 형성되어 있는 구릉을 기준으로 도로가 지나가는 평야 지역과 능선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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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도룡리 도사 마을에 있는 돌탑. 인계면 도룡리 도사(道士) 마을의 주산은 사리봉에서 지맥이 내려온다. 도사 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장군 출동 격고형(將軍出動擊鼓形)이라고 한다. 장군이 북을 울리면서 군사를 일으켜서 나오는 형국이란 뜻이다. 마을의 ‘둥글대’라는 지명도 장군이 북을 ‘둥둥둥’ 치는 형상과 닮았다는 데서 붙여진 것이다. 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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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도룡리 정산 마을에서 마을을 비보할 목적으로 잡석을 올려 쌓아 만든 탑. 도룡리 정산 돌탑은 정산 마을의 수구가 넓어 풍수상 기(氣)가 빠져나갈 염려가 있자, 마을의 기를 보전하기 위하여 마을 입구에 조성한 수구막이 돌탑이다. 정산 마을의 풍수 형국은 조리 터라고 한다. 조리는 밥 지을 때에 쌀을 이는 도구이다. 조리로 쌀을 일어서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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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만수탄 가장자리에 있는 바위. 돈암(墩岩)은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무량산 기슭의 구미 마을에 있는 양배(楊培), 양돈(楊墩) 형제의 우애가 깃든 바위이다. 이 바위는 조선 시대 연산군 대에 살았던 양배, 양돈 형제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1498년(연산군 4)의 무오사화와 1504년의 갑자사화를 경험한 형제는 섬진강 가에서 평생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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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농촌 전통 테마 마을. 테마 마을이란 농촌진흥청의 농촌 지역 개발 사업으로,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마을의 고유한 전통 문화 지식을 발굴하여 도시민이 체험하고 학습하게 하는 장을 마련하여 농가 소득을 증대시키고 독특한 농촌 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마을을 말한다. 마을 별로 알거리, 볼거리, 체험[배울]거리, 놀거리, 먹을거리, 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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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현포리에 있는 동계면 담당 행정 기관. 동계면사무소는 전라북도 순창군 11개 읍·면 중의 하나인 동계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구미·동심·어치 마을이 순창군으로 귀속되면서 동계면으로 부르게 되었고, 1935년 남원군의 수정, 주월, 이동, 유산, 신흥 등 대산면의 일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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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전리(銅田里)는 동전리와 만촌리(蔓村里), 대장리(大場里)를 합해서 법정리로 부르는 명칭이다. 동전 마을은 1567년(명종 22)경 설씨, 박씨, 김씨, 가씨 등 4성이 정착하여 시작된 마을이다. 금과면 명산인 아미산 정기를 타고 굽이굽이 내려와 자리를 잡은 것이 마치 와룡(瓦龍)과 같고 그 기슭이 꼭 구리 밭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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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산. 무량산(無量山)은 물산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뜻한다. 현감 양산보(梁山甫)가 멧돼지를 잡았는데 뱃속에 ‘무량’이란 글자가 있어 무량산으로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예부터 선조들은 이산을 금거북 형상이라 하여 구악(龜岳)으로 불러왔다. 예컨대 풍수지리상 금거북의 꼬리라는 지명을 가진 구미(龜尾)는 700년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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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와 월곡리, 구림면 구곡리 경계에 있는 산. 무이산(武夷山)은 일명 무름산으로도 불리는데, 중국 송나라 주자(朱子)의 무이 구곡(武夷九曲)에서 따온 이름이다. 구림면 구곡리도 무이산 아래에 있어 무이 구곡에서 이름을 따왔다. 팔덕면 청계리는 마을 북쪽에 무이 서원(武夷書院)과 무이산이 있어 무름이라 부르기도 했다. 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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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만수탄 가장자리에 있는 바위. 배암(培岩)은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무량산 기슭의 구미 마을에 있는 양배(楊培), 양돈(楊墩) 형제의 우애가 깃든 바위이다. 이 바위는 조선 시대 연산군 대에 살았던 양배, 양돈 형제의 일화에서 유래한다. 1498년(연산군 4)의 무오사화와 1504년의 갑자사화를 경험한 형제는 섬진강 가에서 평생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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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씨(姓氏)는 이미 단군 조선(檀君朝鮮) 때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예맥(濊貊)의 군장(君長) 여수기(余守己)의 아들이 나라에 공을 세워 서성(徐姓)을 하사 받은 것에 기인한다. 이후 차차 성씨(姓氏)가 생겨 신라는 건국 초 개국에 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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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성황대신 사적 현판(淳昌城隍大神事跡懸板)이 대중들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2년으로, 옥천 향토 사회 문화 연구소 회원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찾아낸 것이다. 순창 성황대신 사적 현판은 원래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의 옥천동 성황당 안에 걸려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말 미신 타파라는 미명 아래 민족 문화 말살 정책이 추진되면서 옥천동 성황당이 헐릴 상황에 놓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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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 구남 마을에서 천태암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신비로운 지기를 가진 땅」은 어은(漁隱) 양사형(楊士衡)[1547~1599]이 거북이의 형상으로 영기(靈氣)를 지니고 있는 천태산에 암자[천태암]를 하나 지었는데, 이곳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은 모두 급제하였다. 또한 과거를 보러 가는 유생들의 급제 여부를 예측하여 모두 맞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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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전라북도 순창군의 국가 지정 문화재와 전라북도의 지정 문화재를 소개한 단행본. 문화재는 선조들이 이룩해 놓은 값진 유산이다. 전라북도 순창군에 소중한 문화재가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현실 속에서 내 고장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북돋고자 『아름다운 순창의 문화재』를 편찬하게 되었다. 저자는 양병완이며, 간행자는 순창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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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양사선의 효행비. 양사선(楊士選)[1524~1566]은 본관이 남원(南原), 자는 원택(元擇)으로 일명 돈암공(墩庵公)이라 하였다. 부정공(副正公) 양홍(楊洪)의 장남이며, 처는 진주 소씨(晉州蘇氏)로 진사 소순(蘇巡)의 딸이다. 자녀는 2남 1녀를 두었다. 정9품 종사랑(從仕郞)에 가자(加資)되었으며, 학문을 닦아 명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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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 양수생(楊首生)과 순창의 관계는 양수생의 처 이씨에서 비롯된다. 이씨는 양수생이 죽은 뒤 가족들로부터 재가를 종용받자 남편의 고향인 남원으로 낙향하였다. 얼마 뒤 순창으로 이주하여 아들 양사보(楊思輔)를 키워 가문을 잇게 하였다. 양사보는 조선 태종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함평 현감을 지냈다. 1467년(세조 13) 나라에서는 이씨에게 정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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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전통 가옥. 순창군 인계면에서 동계 방향으로 국도 21호선을 따라 약 10㎞ 가면 장군목 유원지 입구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가면 무량산 아래에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귀주 마을이 있는데 양순욱 가옥(楊順旭家屋)은 귀주 마을 앞 당산나무를 지나 맨 뒤쪽 대나무 숲이 둘려진 곳에 있다. 주소지는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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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승(子昇), 호는 구음(龜陰). 증조할아버지는 양공준(楊公俊), 할아버지는 사복시 부정(司僕寺副正)을 지낸 양홍(楊洪), 아버지는 병조 정랑을 지낸 양사형(楊士衡)이다. 외조부는 최영(崔穎)이고, 처는 김대립(金大立)의 딸 강진 김씨이다. 남원 양씨는 고려 말 대제학을 지낸 양이시(楊以時)의 며느리이자 양수생(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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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양시진 처 강진[도강] 김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 양시진의 처 강진 김씨는 1577년(선조 10) 9월 4일에 지금의 정읍시 칠보면에서 김대립(金大立)의 딸로 태어났다. 김대립은 문행(文行)으로 천거되어 선무랑(宣務郞) 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를 지냈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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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문관으로 남원 양씨 순창 입향조 양사보의 조부. 본관은 남원(南原). 증조할아버지는 양국재(楊國財), 할아버지는 양윤보(楊允保), 아버지는 경덕재생(經德齋生)인 양서령(楊瑞齡)이다. 처는 문신 탁광무(卓光茂)의 딸 광산 탁씨이며, 아들은 양수생(楊首生), 손자는 양사보(楊思輔)이다. 양이시의 며느리이자 양수생의 부인인 숙인 이씨(淑人李氏)는 1379년(우왕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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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괴정리에 있는 효자 양인규 처 밀양 박씨의 정려각. 양인규 처 열부 밀양 박씨 정려(梁麟圭妻烈婦密陽朴氏旌閭)는 순창군 적성면 괴정리 마계 마을 어귀의 서쪽 길가 산기슭에 있다. 1887년(고종 24) 정려각이 세워져 오늘날에 이른다. 양인규 처 열부 밀양 박씨 정려는 맞배지붕에 겹처마이다. 정려각에는 ‘효자 증 사헌부 감찰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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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순창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길부(吉夫), 호는 모정(慕亭). 고려 시대 대제학을 지낸 양수생(楊首生)의 후손으로 양수생의 처 이씨는 남편이 죽자 남편의 홍패를 안고 개성에서 남원으로 낙향, 다시 순창으로 이주해 동계면 구미리 일대에 남원 양씨가 현재까지도 세거하게 하였다. 양희적의 아버지는 돈암공(墩庵公) 양사선(楊士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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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평남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누정. 어은정(漁隱亭)을 지은 양사형(楊士衡)[1547~1599]은 자가 계평(季平), 호는 영하정(暎霞亭)·어은(漁隱)이다. ‘어은’은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낙향한 선비들이 내수어(內水魚)가 많이 나는 이곳 섬진강 지역에서 낚시를 즐기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순창 나들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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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어치리(於峙里)의 옛 이름은 느제이다. 1914년 이전에는 순창군 아동방에 속하였으며, 행정 구역 개편 때 남원부 영계방과 순창군 아동방을 합하여 동계면에 편입되었다. 어치 마을은 1960년도만 해도 느제, 놋점, 점촌, 멀테, 돌무덤 5개 마을을 통칭하였다. 현재 멀테가 무인촌이 되면서 4개 마을만 있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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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어치 마을에서 마을을 비보할 목적으로 잡석을 올려 쌓아 만든 탑. 어치리 어치 돌탑은 어치 마을의 수구가 넓어 풍수상 기(氣)가 빠져나갈 염려가 있자, 마을의 기를 보전하기 위하여 마을 입구 양쪽에 조성한 수구막이 돌탑이다. 어치리는 용궐산[지명 변경 전 명칭: 용골산]의 서편으로 용궐산 지맥이 동편으로 내려와 산맥의 중턱에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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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은 조선 시대 전라도 지역의 과거 급제자 수가 전주, 남원, 부안에 이어 네 번째로 많았을 정도로 유학의 전통이 오래되고, 뿌리가 깊은 지역이었다. 유학의 전통을 평가하는 기준의 하나로 서원의 건립과 운영을 들 수 있는데, 조선 시대 순창에는 화산 서원(花山書院)[1607년 건립], 무이 서원(武夷書院)[1788년 건립], 지계 서원(芝溪書院)[1788년 건립],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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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풍수지리학 교수인 양상화의 말에 따르면, 남원 양씨(南原楊氏) 양수생(楊首生)의 부인인 열부 이씨(李氏)가 유복자를 등에 업고 남원에서 동계면 구미리에 터를 잡기 전 나무 기러기 세 마리를 날렸더니, 첫 번째는 동계면 구미 마을, 두 번째는 인계면 대마 마을 뒷산 말 명당에, 또 하나는 이곳 장안리(長安里) 평창 마을에 떨어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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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산(芝山) 마을은 일명 건지뫼로 부른다. 지금의 마을이 형성되기 이전에 남쪽에 고랑이란 마을이 있었는데, 남원 양씨(南原楊氏) 몇 가구가 살다가 해마다 수해로 많은 피해가 있어 적응하지 못하고 동계면 어치리로 떠나자 장수 황씨(長水黃氏)가 고랑 터 나무 밑에서 수해를 걱정하였다고 한다. 이 때 한 도승이 지나면서 뒷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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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청계리에 있는 각각 수령 약 280년과 290년의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몽골, 시베리아, 유럽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평안남도 및 함경남도 이남의 전국 산야에 자생하는데 1,000년 이상 장수하여 정자나무로 많이 식재하였다. 높이 26m, 지름 3m에 이른다. 굵은 가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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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 지역과 관련된 한문으로 된 한시, 학문, 한학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한문학은 중세를 대표하는 문학 양식으로, 중국의 한자를 표기 문자로 사용하되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과 정서를 표현하였다. 우리나라의 한문학은 중국 문학과 구별되며 한국 문학의 범주에 포함된다. 순창군의 한문학은 순창군 출신 문인이 지은 시(詩)와 산문(散文), 또는 순창군을 배경으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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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서 양배·양돈 사촌 형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형제 바위와 호랑이의 심령」은 동계면 구미리에 사는 사촌 형제 양배·양돈은 우애가 지극하여 호랑이가 도와주었다는 동물담이자 우애담(友愛談)이다. 설화의 앞부분에는 형제 바위, 배암, 돈바위 등의 암석 유래담이 실려 있으며, 구미리 귀미 마을에는 남원 양씨의 집성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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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산성(大母山城)[홀어머니 산성]은 1975년 2월 5일에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70호로 지정되었으며,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 산 55번지에 위치한다. 해발 150m 내외의 포곡식 산성으로, 산성 내에 연못과 우물이 있고 경천(鏡川)이 산성을 에워싸고 있다. 대모산성은 군창(軍倉)의 용도로 사용되었기에 군사 방어적 산성 기능도 하였을 것이며, 동시에 행정 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