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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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북도 순창군의 역사. 개항기는 일반적으로 1876년(고종 13) 개항부터 1910년 국권 피탈 이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조선은 1876년 조일 수호 조규(朝日修好條規)[강화도 조약]을 기점으로 각국과 통상 조약을 맺어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외국의 근대 문물이 유입되고 조선도 위로부터 새로운 근대 문물의 수용과 근대적인 제도 개선을 위한 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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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의 역사.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 따르면 940년(태조 23)에 처음 주·부·군·현의 이름을 고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이때 개편된 주·부·군·현은 모두 16개소인데, 이들 대부분은 신라의 고도이거나 9주 5소경 지역이었다. 당시는 통일 전쟁이 종식된 지 5년 후로 격동하는 사회의 안정과 확대된 영역, 늘어난 인민을 통치하기 위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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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에 있는 만일사에서 순창 고추장과 이성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고추장과 이성계」는 이성계(李成桂)[1335~1408]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 모든 신령으로부터 감응을 받기 위하여 무학 대사(無學大師)[1327~1405]로 하여금 팔도 명산에 제사를 올리게 하던 중 무학 대사가 머물던 회문산에 들렀다가 한 마을에서 보리밥에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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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당시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광덕산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광덕산(廣德山)은 순창군 팔덕면 장안리·청계리와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금성리 경계에 있는 해발 540m 산으로, 담양의 금성산성과 이어져 있다. 1597년에 정유재란이 발생하자 일본군이 전라도 방면으로 대거 유입되었다. 8월 16일에 남원성을 함락한 일본군 주력 부대는 전주로 향하고, 일부 부대는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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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복실리에 있는 구세군 소속의 교회. 구세군은 1865년 런던 이스트 엔드에서 복음 선교를 시작한 감리교 목사 윌리엄 부드에 의하여 구세군(救世軍)[Salvation Army] 그리스도교로 창설되어 군대식 조직으로 운영되며 복음 전도와 사회사업에 힘쓰는 국제적 규모의 그리스도교 교파 및 자선 단체이다. 윌리엄 부드는 가난한 자에게 식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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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깍쟁이라고 불리는 종지를 가지고 하는 놀이. 간장 종지를 전라도에서는 깍쟁이라고 부른다. 깍쟁이놀이는 남자와 여자들이 노는 방법이 서로 다르다. 남자들은 이 깍쟁이에 3㎝ 내외의 앙증맞은 윷가락을 넣고 흔들어 던지며 노는데, 윷놀이와 같다. 여자들은 10~20명이 빙 둘러 무릎을 꿇고 앉아서 치마 속으로 깍쟁이를 돌리고, 가운데에 술래 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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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일제가 무력으로 전라북도 순창을 비롯해 남한 지역의 의병들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행했던 작전. 일제는 비옥한 토지와 항구를 갖고 있는 전라도 지역을 매우 탐냈으나 전라도 지역의 의병들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제는 의병의 뿌리를 뽑을 생각을 했는데, 이를 남한 대토벌 작전이라 한다. 일본군 임시 한국 파견대의 보병 2개 연대는 1909년 5월 말 부산에 상륙해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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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사용하는 아래위가 좁고 배가 불룩하게 나온 오지 그릇. 도가지는 항아리의 전라도 방언이다. 항아리는 곡물을 담아 놓거나 장류나 물을 담는 데 써 왔다. 항아리 ‘항(缸)’ 자는 ‘장군 부(缶)’에 ‘장인 공(工)’이 들어가서 액체를 담는 그릇이란 의미의 상형 문자다. 순창 지역은 예부터 장류가 발달하여 다양한 크기의 항아리를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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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전라북도 순창군을 포함하여 삼남 지역을 중심으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 운동. 동학(東學)이란 서학(西學)에 맞서는 종교로 1860년 최제우(崔濟愚)가 창시하였다. 동학 농민 혁명은 1894년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운동으로, 사관에 따라 동학란, 동학 농민 운동, 갑오 농민 항쟁 등으로 불리다가 2004년 「동학 농민 혁명 참여자 명예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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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8월~9월에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운북리 단풍정 마을 일대에서 일본인이 일으킨 순창군민 학살 사건.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하고 일본군은 전라도 방면으로 대거 들어오게 된다. 8월 16일에 남원성을 함락한 일본군의 주력 부대는 전주로 향하게 되고, 일부 부대는 두 갈래로 순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 중 한 갈래는 순창읍내로 들어오고, 다른 한 갈래는 팔덕면 방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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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문화 활동에 의하여 창조된 가치가 뛰어난 사물. 문화재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문화 활동에 의하여 창조된 가치가 뛰어난 사물 혹은 문화재 보호법이 보호의 대상으로 정한 유형 문화재, 무형 문화재, 민속 문화재, 천연 기념물, 사적, 명승지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2014년 현재 순창군의 국가 지정 문화재는 6건으로 보물 3건, 중요 민속 문화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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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인정, 풍속, 생활 감정 따위를 나타내어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노래. 민요는 특별한 재주나 기교가 없이도 이 땅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만들고 부를 수 있다. 민요는 그 기능에 따라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 등으로, 향유 계층에 따라서는 성인요, 부녀요, 아동요 등으로 구분한다. 또한 민요는 흔히 통속 민요[대중 민요]와 토속 민요[향토 민요]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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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방축리에 있는 수령 약 280년의 팽나무. 팽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타이완, 일본, 라오스, 베트남, 태국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함경북도 이외의 전국에 분포하지만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표고 50~1,100m 지역에서 자생한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 4~11㎝ 난형,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이며 끝이 뾰족하면서 좌우가 약간 비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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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 빨치산들로 구성된 빨치산 토벌 부대인 보아라 부대가 1951년 10월 14일에 전라북도 순창의 회문산을 급습한 사건. 보아라 부대는 지리산 지구 전투 경찰 사령부 안에 특별히 설치된 사령관 직속 부대로서 1951년 10월부터 1953년 4월까지 1년 6개월간 존속하였다. 창설할 당시에는 38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었는데, 차차 증원되어 한때는 150명 정도까지 비대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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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6월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어은리에서 의병장 신보현 부대가 일본군과 벌인 전투. 일제는 조선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전 의병들을 먼저 소탕하고자 했다. 특히 전라도 지역은 의병들이 무수히 많이 일어났으며 그로 인해 일본군은 크게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의병 활동은 시기적으로 볼 때 1895년의 을미 의병, 1905년의 을사 의병, 1907년의 정미 의병으로 나누어지는데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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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서 근대에 국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병들의 활동. 한말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순창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 출신지를 보면, 복흥과 쌍치, 구림 등 산악 지대 출신들이 많다. 의병들이 대체로 소규모로 유격전을 많이 했고, 그러다보니 산악 지대가 의병의 이동 통로 내지는 근거지가 되는 경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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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남계리에 있는 적쇠불고기 전문 한식 음식점. 전통 한옥에서 2대째 57년간 운영해 오고 있는 음식점이다. 100년이 넘은 전통 한옥 정원에 새들이 많이 모여들어 ‘새집’이라 불리며, 수십 년을 전통 재래식으로 요리한 음식들을 내놓고 있다. 박귀님[84세]이 1957년에 현재의 전통 한옥에서 한정식 업소를 개업하여 40여 년간 운영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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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계절에 따라 관습적·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생활 의식. 세시라는 말은 해[年]와 때[時]의 합성어로서 사시절, 시절, 절후, 명절 등의 뜻을 지닌다. 세시 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한 해를 단위로 일정한 시기에 관습적·주기적·전승적·반복적·의례적으로 거행되는 행동 양식 또는 생활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다. 세시 풍속은 음력의 월별 24절기와 명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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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을 대표하는 호남정맥의 줄기에 위치한 순창군은 대부분이 산간지로 서쪽으로 회문산, 북쪽으로 강천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과 남쪽으로는 섬진강과 적성강 등 크고 작은 하천이 흘러 비옥한 농토가 펼쳐져 있다. 이러한 순창 지역은 판소리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간직한 고장이다. 판소리를 동편제(東便制), 서편제(西便制)로 구분하는 기준이 섬진강인데, 순창은 바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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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8~9월에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아미산 일대에서 일본인이 일으킨 순창군민 학살 사건.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하고 일본군은 전라도 방면으로 대거 들어오게 된다. 8월 16일에 남원성을 함락한 일본군의 주력 부대는 전주로 향하게 되고, 일부 부대는 두 갈래로 순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 중 한 갈래는 순창읍내로 들어오고, 다른 한 갈래는 팔덕면 방면으로 들어왔다.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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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순평사의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여말 선초의 금동 여래 좌상. 구전에 의하면 순평사 금동 여래 좌상(淳平寺金銅如來坐像)은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어느 사찰에 모셔져 있었다. 그러나 해방 후에 전라남도 담양군의 어느 개인에게 옮겨 갔다. 그러던 것을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는 백양사의 포교당에서 거의 완파 직전의 불상을 수습하여, 197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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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심초리(深草里)는 매봉산[511m]을 기점으로 좌우에 높은 산이 둘러싼 깊숙한 골 안에 분지를 틀고 형성된 심심산골 오지 마을이다. 그래서 예부터 깊고 깊은 골짜기에 나무만 울창하다 하여 ‘지푸실[짚푸실]’이라 불렀으며, 한자로는 심초(深草)라 하였다. ‘지푸실’은 전라도 방언으로 깊은 마을을 의미한다. 전해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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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는 조선시대 자기소가 있던 마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자기소(磁器所)가 하나이다[군의 북쪽 18리[약 7.07㎞] 심화곡(深火谷)에 있다][磁器所一(在郡北十八里深火谷)]”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세종의 명에 의해 전국의 지리 상황을 알 수 있게 편찬한 책으로 1424년(세종 6)부터 1432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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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북서부에 있는 행정 구역. 쌍치면은 순창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행정 구역으로 면 소재지는 쌍계리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상치등면과 하치등면의 시산리, 요암리, 산수리, 신평리, 도고리, 석현리 등 21개 리와 태인군 남촌일변면의 굴치리를 합하고 하치등과 상치등의 이름을 따 쌍치면으로 개칭하였다. 쌍치면은 삼국 시대 도실군(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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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집안의 재물을 지켜 주는 수호신. 업은 가정에서 집안의 재물을 관장하는 가정신이다. 업신은 구렁이, 족제비 등의 동물로 상징되고, 업의 신체는 집의 뒤꼍 장독대 옆에 나무를 쌓아 업주가리를 만들어 놓기도 한다. 구렁이와 족제비를 업신으로 섬긴 이유는 곡물을 쌓아 놓은 곳에는 구렁이와 족제비가 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전라도에서는 업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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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1712~1781]은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舟)의 후손으로 조선 지리학의 황금기였던 18세기 후반에 영조의 명을 받아 조선의 지도 제작사에서 매우 중요한 방안 지도인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를 제작하였다. 또한 순창의 신경준가(申景濬家) 후손 집안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강화 이북 해역도(江華以北海域圖)」와 「북방 강역도(北方疆域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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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와 풍산면 죽곡리에 있는 산. 옥녀봉(玉女峰)은 『한국 지명 총람』에는 옥녀처럼 용모가 단정하여 얻은 이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 마을 주민에 의하면 햇볕을 가리는 천막을 친 형상이라 하여 전라도 방언으로 채알봉[차일봉]으로 부른다고 했다. 동쪽의 바위산은 『산경표(山經表)』를 편찬한 신경준(申景濬)의 생가가 있는 남산(南山)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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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8월~9월에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대가리에 있는 옥출산성에서 일어난 전투.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하고 일본군은 전라도 방면으로 대거 들어오게 된다. 8월 16일에 남원성을 함락한 일본군의 주력 부대는 전주로 향하게 되고, 일부 부대는 두 갈래로 순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 중 한 갈래는 순창읍내로 들어오고, 다른 한 갈래는 팔덕면 방면으로 들어왔다. 당시 순창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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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의 숙박 시설. 원(院)은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중요한 길목에 설치된 편의 시설이다. 원과 역(驛)은 같은 장소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아 역과 원을 합해 역원(驛院)이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조선 시대 전국에는 모두 1,310개의 원이 있었으며 경상도 468개, 전라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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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은 조선 시대 전라도 지역의 과거 급제자 수가 전주, 남원, 부안에 이어 네 번째로 많았을 정도로 유학의 전통이 오래되고, 뿌리가 깊은 지역이었다. 유학의 전통을 평가하는 기준의 하나로 서원의 건립과 운영을 들 수 있는데, 조선 시대 순창에는 화산 서원(花山書院)[1607년 건립], 무이 서원(武夷書院)[1788년 건립], 지계 서원(芝溪書院)[1788년 건립],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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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포함한 전역에서 국가가 외세의 침입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일어난 민병. 박은식(朴殷植)은 『한국 통사(韓國痛史)』에서 의병이란 ‘민군으로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싸우는 사람’이라 정의 내렸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부대이기에 자세한 기록이 없어 언제부터 의병이 생겨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오래전부터 나라가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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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8월~9월에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천리 일대에서 일본인이 일으킨 순창군민 학살 사건. 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하고 일본군은 전라도 방면으로 대거 들어오게 된다. 8월 16일에 남원성을 함락한 일본군의 주력 부대는 전주로 향하게 되고, 일부 부대는 두 갈래로 순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 중 한 갈래는 순창읍내로 들어오고, 다른 한 갈래는 팔덕면 방면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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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순창군 지역에서 활약한 의병장.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시중(時中)·중옥(中玉), 호는 돈헌(遯軒). 증조할아버지는 임경손(林慶孫), 할아버지는 임민규(林玟圭), 아버지는 임용래(林溶來)이며, 어머니는 송악 왕씨이다. 조준극(趙俊極)의 딸인 임천 조씨와 15세에 결혼했으나 부인이 일찍 죽어 16세 되던 해에 송상희(宋祥喜)의 딸인 여산 송씨와 재혼하였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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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1598년 두 차례에 걸친 일본의 침략으로 전라북도 순창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4일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파죽지세로 북상하던 일본군은 각지의 의병과 명나라 지원군, 또 이순신(李舜臣)에 의한 해로 통제 등으로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듬해 4월부터 조선과 화의가 오가게 되다가 6월 일본군은 철수를 하였다. 그러나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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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 『조선 창극사(朝鮮唱劇史)』에 의하면 장재백(張在伯)[?~1907]은 전라북도 순창군 출생의 철종과 고종 양대 간 인물로, 김세종(金世宗)의 직계 문인으로서 동편제의 본령을 계승한 명창이다. 동배(同輩) 정창업(丁昌業)·김창록(金昌祿)과 함께 한 시대를 울렸다고 한다. 일명 장자백(張子伯)으로도 알려졌지만 최근 학계에 보고된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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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 어암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문관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아버지는 돈녕부 판관(敦寧府判官) 정유침(鄭惟沈)이다. 정철(鄭澈)[1536~1593]은 1536년(중종 31) 서울 장의동(藏義洞)[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출생하였다. 인종(仁宗)의 귀인(貴人)[후궁]인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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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의 역사와 문화. 1. 조선 전기 1409년(태종 9) 전라도의 모든 임내를 직촌화하는 조치에 따라 순창군의 임내인 적성현과 복흥현 및 치등소, 유등촌소, 감물토소, 잉좌소, 고도암소 등이 순창군의 직촌으로 병합되었다. 신라 때부터 현이었고, 고려 시대에는 남원부나 순창군의 임내였지만 하나의 고을이던 적성현과 복흥현 등이 없어지고 5개의 소까지 합해져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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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불씨 및 부엌 등을 관장하는 신. 조왕(竈王)은 집안에 모시고 위하는 가신 신앙의 한 대상으로 불씨 및 부엌 등을 관장하는 신이다. 이를 조왕신, 지앙, 조왕각시, 정지조왕 등이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부뚜막신’이라고 부른다. 조왕은 주로 부엌에 조왕 중발(竈王中鉢)을 모셔 놓고 청수를 갈아 놓는 방식이다. 순창 지역에서는 전통 가옥의 부엌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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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가톨릭 교회. 독일인 예수회 신부 아담 샬(Johann Adam Schall von Bell)[1591~1666]과 북경에 와 있던 소현 세자의 만남은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오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때 북경으로부터 많은 서양 학술서가 들어오게 되면서 당시 정계로부터 은퇴한 남인(南人) 학자들이 마테오 리치(Matt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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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에서 집터를 관장한다고 믿는 가신. 철륭은 전라도 지역에서 집터를 관장하는 가신이다. 이를 터주, 당산, 철륭 당산, 철룡, 천룡 등이라고도 한다. 철륭은 집의 터주 신, 집의 지신(地神)으로 부르고, 집의 뒤꼍[뒤안]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의 뒤꼍은 집안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며, 그곳을 집의 당산, 천룡당으로 부르기도 한다. 당산과 천룡당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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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에 있던 사찰. 취암사(鷲巖寺)는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무량산[586.4m] 아래에 있었다. 본래 무량산의 이름은 구악산(龜岳山), 즉 거북산이었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거북과 관련된 금구예미형(金龜曳尾形)으로, 영험한 거북이가 진흙으로 꼬리를 끌면서 들어가는 형국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져 온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구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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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도기소가 있던 마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도기소(陶器所)가 하나이다[군의 동쪽 19리(약 7.46㎞) 취암산리(鷲巖山里)에 있는데, 모두 하품이다][陶器所一(在郡東十九里鷲巖山里, 皆品下)]”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는 세종의 명에 의해 전국의 지리 상황을 알 수 있게 편찬한 책으로 1424년(세종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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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은 맑고[淳] 창성[昌]한 땅이다. 순창은 예로부터 옥천(玉川)·순화(淳化) 등으로 불릴 만큼 물이 맑고 순박하며, 절경이 많고 인심이 후덕하여 뛰어난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다. 또한 순창은 전라북도 동남부 산간 분지에 속하지만, 예로부터 풍부한 농경 생산 덕택에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자연환경이 수려하여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알려졌다. ‘생거순남(生居淳南) 사거임실(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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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암리(花岩里)의 순 한글 이름은 꽃바우로, 이를 한자로 화암이라 표기하였다. 마을 뒷산 형상이 꽃을 찾은 벌과 나비 모양을 하고 있기에 꽃바우라 하였는데, 이 바위 형상은 사자 모양으로 양쪽에서 보아도 똑같은 맹호 형상으로 양호밧등이라고 불린다. 1760년(영조 36) 발간된 『옥천 군지(玉川郡誌)』 방리(坊里) 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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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봄철에 산을 찾아 화전을 부쳐 먹던 풍습. 화전놀이는 부녀자들이 꽃피는 음력 3월 무렵에 산이나 들로 나가 꽃을 보고 화전(花煎)을 부쳐 먹으며 하루를 즐겁게 즐기던 풍속이다. 음력 3월 3일을 삼짇날이라고 한다. 이때는 또한 진달래가 만발할 즈음이다. 날씨가 따뜻하여 주로 부녀자들이 간단한 취사도구를 가지고 계곡을 찾아가 하...